[재경일보 김동렬 기자] '계약'이란 '복수 이상의 당사자가 의사표시의 합의를 이룸으로써 이루어지는 법률행위'다. '의사표시의 합의'라는 표현은 각 당사자가 서로 대등하다는 것을 나타낸다.
하지만 그 관계가 '갑'과 '을'이라는 두 단어가 등장하면서 판이하게 달라졌다. 갑과 을은 계약서 상 계약당사자 명칭이 반복되는 데에 따르는 번거로움을 간소화하기 위해 쓰여졌지만, 대등하지 않은 계약내용에 따라 갑과 을이 강자와 약자, 대기업과 중소기업 등을 표현하는 것으로 인식되면서 오늘날의 부정적인 '갑을관계'가 만들어졌다.
최근 갑을관계 문제로 여론이 들끓고 있다. 직접적 갑을관계에서의 사태뿐만 아니라, 항상 갑의 위치에서만 살아온 일부 사람들의 부도덕한 행위가 연일 보도되고 있다. 특히 이번 '남양유업 조폭우유' 사건에서 소위 갑의 행위를 보면, 우리 사회에는 조직과 조직, 사람과 사람 혹은 조직과 사람 사이에 오직 갑을관계만 있는 듯 하다.
갑을관계 관련 보도들이 쏟아지면서 그동안 설움이 복받쳐 있던 대한민국의 수많은 을들의 울분이 터져 나오고 있다. 온라인이 연일 뜨겁다. 갑을관계나 '갑의 횡포'라는 단어가 그동안 수없이 나왔지만, 실제 사례들이 계속 수면위로 드러나면서 5년전 광화문 앞 촛불처럼 을들이 목소리를 더욱 크게 낼 기회가 생긴 것이다.
이처럼 갑의 횡포에 대한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뒤늦게 대기업들이 각각의 처방법을 내놓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처방법이 별로 미덥지 않다. 대부분이 직원에 대한 교육 내지는 관리감독 강화 뿐이다. 조직과 기업문화 자체가 변하지 않은채 여전히 목표는 무리하게 설정해 놓고 변죽만 울리고 있다. 또 다시 갑을관계 문제가 불거지면 해당직원만 징계하는 것으로 처리할 것인가. 직원을 교육하고 관리감독하기 전에 조직과 기업문화부터 근본적으로 혁신해야 한다.
한국사회 내 깊게 박힌 갑을관계의 뿌리를 우선적으로 뽑아내지 못한다면 '경제민주화'는 점점 요원해질 수 밖에 없다. 정부는 우선 정부기관, 공기업 등에 남아있는 갑을관계부터 뿌리 뽑고, 더는 '밀어내기', '단가 후려치기' 등 갑의 횡포를 대변하는 단어도 등장하지 않게 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과감하게 입법을 해서라도 갑을관계를 바꿔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