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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한라산·지리산이 코오롱 이웅렬 회장 뒷동산인가

[재경일보 김동렬 기자] 코오롱은 쌍용자동차와 함께 대표적인 정리해고 회사이자, 한국 노사관계에서 가장 오랜시간 동안 노사가 대립하고 있는 사업장이다.

코오롱이 2005년 2월 민주노조를 깨기 위해 78명을 정리해고한 이후, 노동자들은 정리해고 철회와 복직을 요구하며 싸웠다. 햇수로 8년, 달수로 100개월, 날수로 3000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코오롱 노동자들이 지난해 5월11일 과천 코오롱 본사 앞에서 천막농성을 시작한 지도 1년이 지났다. 하지만 코오롱은 단 한 차례도 대화하자는 말조차 건네지 않았다.

정리해고로 8년동안 싸우고 있는 최장기 사업장 노동자들과 함께하기 위해 시민들이 하나 둘 모였다. 황량한 과천 코오롱 본사 앞에서 시민들이 하나 둘 촛불을 켜기 시작했고, 퇴근한 후 음식을 가지고 찾아오는 시민들이 생겨났다. 공장에서 쫓겨나 3000일이라는 상상할 수 없는 시간동안 거리에서 싸우고 있는 노동자들과 함께 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났다. 시민들과 지역 사회단체는 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회사가 대화에 나설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회사는 지난 8년 동안 절규하는 노동자를 외면했던 것처럼 노동자와 시민들의 요구에 귀를 닫았고, 결국 시민들은 소비자로서 코오롱에 대한 불매운동에 나서게 된 것이다.

이러한 가운데 코오롱은 노동자와 시민들의 자발적인 불매운동을 막기 위해 사상 최초로 전국 102개 유명산과 등산객을 상대로 '불매운동 등 업무방해금지가처분신청'을 냈다.

코오롱인더스트리는 코오롱 정리해고분쇄투쟁위원회 최일배 위원장을 비롯한 3인이 코오롱스포츠 242개 매장뿐만 아니라 전국 102개 유명산에서 1인 시위, 현수막과 피켓, 유인물 배포, 스티커 부착, 집회를 하거나 제3자에게 하도록 하면 1일 100만원을 지급하라는 가처분 신청을 낸 것이다. 등산객이 코오롱 회사에 정리해고자를 복직시키라고 산에 올라 1인 시위를 하면 법원에서 최일배 위원장 등에게 100만원씩을 물게 하라는 것이다.

또 코오롱은 유인물이나 스티커에 기재해서는 안 될 문구에 대해 '부도덕한 기업', '나쁜 코오롱' 등 회사에 대한 비판 문구는 물론 '코오롱과 정권간에 유착행위가 있음을 암시하는 일체의 문구'라며 '박근혜', '박지만' 이라는 문구를 포함시켰다. 코오롱 노동자가 '박근혜'라고 쓴 피켓을 들고만 있어도 100만원씩 물리게 하라는 것이다.

정리해고 과정과 결과, 노사정책, 정권과의 유착관계, 부산저축은행, 발암물질 등 코오롱이 사용해서는 안 된다며 소장에 기재했던 문구는 거꾸로 검찰이 나서서 코오롱에 대해 조사해야 할 의혹들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코오롱 매장이나 본사를 넘어 전국 102개 유명산에 대해 가처분신청을 낸 것은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코미디다.

코오롱은 이 소송을 위해 주말마다 102개 명산, 수천개에 달하는 등산로에 코오롱 직원들을 보내 등산객들을 감시하고, 코오롱 불매 유인물을 나눠주거나 정상에 올라 1인 시위를 하는 등산객을 촬영해 고소하겠다는 것이다. 코오롱이 242개 매장과 102개 유명산 등산로마다 불매운동을 감시하려면 수천명의 직원을 주말마다 보내야 한다.

이 가처분신청대로라면 법원은 코오롱 불매운동을 막기 위해 집행관을 전국 102개 유명산, 천개가 넘는 등산로에 보내 가처분 내용을 공시해야 하는 것이다. 한라산과 지리산, 설악산과 북한산이 이웅렬 회장의 뒷동산이라도 되는 것인가.

박근혜 대통령은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인 12월26일 대기업 회장들을 만나 "경영의 어려움을 돌파하기 위해 구조조정이나 정리해고부터 시작할 게 아니라 근로자들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한 지혜와 고통 분담에 나서주실 것을 부탁한다"고 말했다. 6월 임시국회에서는 정리해고의 요건을 '긴박한 경영상 필요'에서 '경영 악화로 사업을 계속할 수 없는 경우'로 강화하는 법안이 제출되어 있고, 여·야가 의견을 함께 하고 있다.

하지만 코오롱은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는커녕, 오로지 민주노조를 깨기위해 정리해고를 단행했다. 새 정부의 정책방향에 맞추기 위해서라도 코오롱은 해고자들을 복직시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