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김동렬 기자] 지난 7월 법무부는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공약에 따라 상법개정안을 입법예고한 바 있으며, 이후 재계의 거센 반대로 인해 논란이 되고 있다. 특히 지난 8월말 박근혜 대통령이 재계 총수들과 만난 자리에서 상법개정안 후퇴의 뜻을 밝힘에 따라 대선공약이었던 경제민주화 정책들이 모두 후퇴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동양그룹 위기로 다시 제기된 사외이사 및 감사위원의 거수기 논란은 대주주와 경영진의 견제·감시를 강화하기 위한 상법개정안의 필요성을 다시 한번 입증하며, 이번 상법 개정이 하반기 경제민주화 입법 논의의 중심에 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현행 감사위원회의 현황을 자세히 살펴봄으로써 현재 감사위원회를 중심으로한 기업지배구조의 문제를 들여다 보고, 논란에 휩싸인 상법개정안의 원안 고수의 필요성을 강조하고자 자산 2조원이상 유가증권시장 상장기업 146개 기업의 2012년 사업보고서를 분석했다.
조사결과 자사 2조원이상 유가증권시장 상장기업 144개 중 115개(80%)가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소속 기업이며, 이른바 총수가 있는 대기업집단인 재벌계열사는 105개로 72.9%에 달했다. 즉, 이번 상법개정안으로 가장 많은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되는 대상이 재벌총수이기 때문에 이들의 반대가 극렬한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141개 기업의 감사위원회 활동내역을 분석한 결과, 747건의 회의에서 1881건의 안건이 있었다. 하지만 이 중 부결 또는 보류 등 가결되지 않은 안건의 수는 단 4건(0.2%)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재벌계열사 중에서 가결되지 않은 안건은 단 1건에 그쳐, 대부분이 사실상의 심의나 회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채, 감사위원들의 역할이 거수기에 그쳤다는 것을 반증했다. 이처럼 감사위원들이 재벌총수 및 경영진의 우호적 인사들로 점철되어 사실상 재벌총수와 경영진을 제대로 견제하거나 감시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144개 상장기업의 464명 감사위원(감사 포함)의 경력을 크게 ▲학계 출신 ▲공무원 출신 ▲계열사 출신 ▲기타로 분류한 결과, 각각 141명(30.4%), 191명(41.2%), 25명(5.4%), 102명(22.0%)으로 나타나 공무원 출신 감사위원이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공무원 출신 감사위원을 출신부처별로 분류하면, 국세청 출신 27명(14.1%), 금감원 출신 24명(12.6%), 검찰청 출신 18명(9.4%) 등으로 사정기관 출신이 가장 많았으며, 이어 기획재정부 출신 15명(7.9%), 감사원 출신 15명(7.9%), 법원 출신 14명(7.3%) 등으로 나타났다. 여러 기관에서 근무한 경력을 가진 중복 경력을 고려할 경우, 국세청 출신 52명, 기획재정부 출신 33명, 금감원 출신 31명, 검찰청 출신 21명 등으로 나타나, 사정기관 출신 퇴직 공무원들이 상당수 감사위원으로 취업해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한편, 장관 출신은 모두 14명, 차관 출신은 20명 등에 달해 고위공무원들을 통한 정부부처 로비를 위한 포석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같은 사정기관 출신, 고위공무원 출신의 낙하산 인사를 통해 감사위원을 대다수 선임하여 세무조사, 검찰조사의 방패막이 또는 로비스트로 활용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드는 부분이다.
144개 상장기업의 감사위원(감사 포함)은 총 464명으로, 사외이사를 겸직하고 있는 감사위원(감사 포함)의 수는 424명(91.4%)으로 나타났다. 144개 상장기업의 전체 등기임원수는 1158명으로 나타났으며, 이중 상근이사 및 비상무이사 등 사내이사의 수는 474명으로 40.9%를 차지하며, 사외이사의 수는 684명으로 59.1%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현행 상법 제415조의2(감사위원회) 2항에 따라 감사위원은 3명 이상의 이사로 구성하되, 사외이사가 위원의 2/3 이상이어야 하는 규정 때문에 높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규정은 위와 같이 사외이사와 감사위원을 겸직하면서 감사위원회의 이사회 감독업무는 자기감독의 모순이 발생하게 된다는 측면에서 개정 필요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이처럼, 불완전한 기업지배구조로 인해 사외이사 및 감사위원회 제도가 형해화(形骸化)되어, 재벌의 전횡으로 인한 경제양극화는 가속화되고 있다. 이로 인해 경제민주화 흐름이 시대적 요구로 자리잡고, 박근혜 대통령마저 대선공약으로 경제민주화를 내세워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다. 따라서 대선 공약 중 하나였던 이번 상법개정안 내용은 반드시 감사위원 분리선출 및 집중투표제 도입 등을 담아 원안대로 통과되어 기업지배구조를 바로잡아 재벌총수의 전횡을 막아야 한다.
이를 위해 먼저 감사위원을 분리 선출하도록 의무화하여 지배주주로부터 감사위원회의 독립성을 확보해야 한다. 재계는 감사위원 분리선출 제도가 도입되면 외국계 투기펀드 등의 경영권 장악으로 경영권이 위협받는다고 하지만, 위 제도를 도입하지 않음으로 인해 현재 벌어지고 있는 대주주와 경영진의 전횡을 그대로 존치하자는 주장과 다름없다.
이사회가 정상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1차적으로 사외이사가 사내이사(경영진)를 적절히 견제할 수 있어야 한다. 2차적으로 감사위원회가 독립적으로 이사를 견제·감시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하지만, 현재 실제 운용되는 모습은 사외이사와 감사위원이 대부분 동일해 사내이사, 즉 경영진에 대한 견제 역할이 2단계에서 1단계로 줄어들어 제대로 견제·감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정상 운영 상태와 같이 감사위원의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사외이사와 분리해 선출해야 한다.
또한 감사위원회가 이사회의 결의에 따른 이사의 직무집행을 더욱 효과적으로 감독하려면 감사위원의 분리선출과 더불어 이들 감사위원 선임시 대주주의 의결권 제한과 집중투표제를 병행함으로써 대주주 및 경영진의 우호적 인사의 선임을 최소화해 감사위원회의 독립성을 높여야 한다.
집행임원제도 도입으로 이사회의 업무감독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집행임원제도는 집행임원이 이사회로부터 업무에 관한 의사결정권과 집행권을 위임받아 이를 결정·집행하고, 이사회는 집행임원의 이러한 결정 및 집행을 감독하는 시스템이다. 즉, 이사회에 집중된 업무집행권과 업무집행감독권을 제도적으로 분리하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조치이다. 이사회가 업무집행권과 업무집행에 대한 감독권을 동시에 가지게 되면 결국은 자신이 행한 업무집행에 대해 자신이 감독하는 이른바 자기감독 현상이 나타날 수밖에 없는데, 이러한 현실 하에서는 엄정한 감독기능의 집행은 기대하기 어려운 한계가 있다.
마지막으로 다중대표소송제와 집중투표제, 전자투표제는 1주 1표의 기업경영 민주화를 위해 소수주주를 보호하는 차원에서 반드시 도입되어야 하는 것들이다. 우리나라 기업, 특히 재벌을 중심으로 가장 지적받고 있는 문제인 소유-지배 괴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위와 같은 제도 개선을 통해 재벌총수의 책임경영을 의무화해야 한다.
이미 전문가 설문조사에서도 감사위원 분리선출시 경영권에 위협이 된다는 재계의 주장에 경영·경제·법학 전문가들의 80% 이상이 동의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위와 같은 제도개선을 통해 비로소 건전한 기업지배구조 속에서 건전한 기업 활동을 싹틔울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상법개정안은 반드시 원안대로 통과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