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김동렬 기자] 최근 공정거래위원회가 일감몰아주기 규제 관련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공정위는 지난 몇 주 논란이 됐던 규제대상 범위와 관련해 총수일가의 지분율 기준을 정하고, 그 중 내부거래금액·거래비중·가격차이 등에서 일정기준 미만인 경우는 규제대상에서 제외하는 최종안을 마련했다. 또한, 일감몰아주기에 대한 적용제외 사유인 효율성 증대, 보안성, 긴급성에 대한 내용을 보다 상세하게 규정했다.
하지만 규제대상에서 제외되는 조건 및 사유가 지나치게 광범위하게 설정됨으로 인해, 일감몰아주기에 대한 공정거래법 규제는 유명무실해졌다. 결국 박근혜 대통령이 출범 7개월 만에 복지공약 폐기와 함께 경제민주화 공약도 포기했음이 확인된 것이다.
공정위의 시행령 입법예고안을 보면, 일감몰아주기 규제 관련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의 쟁점사항이었던 지분율, 내부거래금액, 내부거래비중, 정상가격과의 차이비율 등이 다음과 같이 제시됐다.
우선, 공정위는 원안대로 일감 몰아주기 규제의 적용대상을 총수일가의 직접보유 지분이 30% 이상인 상장회사와 20% 이상인 비상장회사로 했다. 이는 총수일가가 직접 지분을 보유하지 않고 간접적으로 지배하는 경우는 규제대상이 되지 않는 문제점이 있으며, 총수 있는 43개 기업집단의 1519개 계열사 중 13.7%인 총 208개 회사(상장 30개, 비상장 178개)만이 규제대상이 된다.
또한, '합리적인 고려나 비교과정 없는 상당한 규모의 거래'와 관련해서는 연간 내부거래 매출액이 200억원 미만이고 내부거래 비중이 12% 미만인 경우는 적용제외하는 것으로 정해 86개 계열사가 규제대상에서 제외되게 됐고, '상당히 유리한 조건의 거래'에 대해서는 정상가격과의 차이가 7% 미만으로서 연간거래총액 200억원(자금·자산의 경우 50억원) 미만의 거래를 제외하는 것으로 해 약 21개의 계열사가 제외될 가능성이 생겼다. 따라서 확실한 규제대상 회사는 약 100여개로 축소됐다.
더 중요한 문제점은 법에서 정한 일감몰아주기의 적용제외 사유인 효율성 증대, 보안성, 긴급성 요건이 지나치게 광범위하게 설정됐다는 것이다. 공정위는 시행령 개정안에서 '효율성 증대' 사유로 5가지, '보안성' 사유로 2가지, '긴급성' 사유 1가지를 제시했다. 법률 개정 당시부터 효율성 등의 적용제외 사유는 일감몰아주기 규제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내용이므로 법안에 포함되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됐는데, 결국 시행령에 그 사유가 지나치게 넓게 열거됨으로써 사실상 규제를 무력화시킬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일감몰아주기가 발생하는 주요 업종 및 분야가 물류, SI, 광고, 건설, 부동산 관리, 중개(원료 매입중개, 상품·제품 매출중개) 등인데, 시행령에서 제시된 적용제외 사유에 해당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특히 지난 9월4일 공정위는 '2013년 대기업집단 내부거래 현황 정보'를 공개하면서, 총수일가의 지분율이 높고 내부거래비중이 높은 회사로 현대글로비스(물류업), SK C&C, 현대오토에버, 한화에스앤씨(이상 SI업종), 현대엠코(건설업), 이노션(광고업), 삼성에버랜드(단체급식 및 시설관리업) 등을 제시한 바 있는데, 이러한 회사들은 적용제외 사유에 모두 해당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우려에 대해, 공정위는 시행령에 제시된 적용제외 사유에 해당되더라도 효율성 증대효과가 '명백하게' 인정되거나, 보안성 훼손으로 '경제적으로 회복하기 어려운' 피해를 초래하거나 초래할 우려가 있는 경우 등의 단서조항이 있으므로 규제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예를 들어 기업 측에서 일감몰아주기의 효율성 증대효과가 명백히 있다고 주장할 경우, 공정위는 기업의 주장을 반박할 만한 기업내부정보도 접근하기 어렵고 기업의 효율성을 평가할 전문성도 없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규제가 불가능하다. 공정위 실무진의 입장에서는 행정소송에서 패소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는 사안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조사를 하거나 과징금 등의 제재조치 부과에 나설 유인을 갖기 어렵게 됐기 때문이다.
또한 효율성 증대효과의 경우로 제시한 '라. 긴밀하고 유기적인 거래관계가 오랜 기간 지속되어 노하우 축적, 업무 이해도 및 숙련도 향상 등 인적, 물적으로 협업체계가 이미 구축되어 있는 경우'는 아예 대놓고 기존의 일감몰아주기를 인정해주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애초에 이러한 적용제외 사유를 법안으로 넣은 것 자체가 기존의 법체계상으로도 맞지 않다. 기존의 공정거래법 '부당지원행위 금지'는 적용제외 사유를 심사지침(고시)로 규정하고 있었다. 이 심사지침은 일감몰아주기를 통한 부당지원행위를 판단할 때 '비용절감, 품질개선 등 효율성 증대효과가 발생했는지 여부 등 당해 행위에 정당한 이유'가 있는지를 고려하도록 매우 좁고 추상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즉, 법에서 위임한 시행령, 다시 시행령이 위임한 고시를 통해서 적용제외 사유를 규정하였던 것으로, 이 고시는 법률이 아닌 공정위의 법률집행 과정의 실무적 지침일 뿐이었다. 하지만, 이번 개정 공정거래법은 적용제외 사유를 법에 명시하고, 다시 시행령에서 이를 더욱 상세하게 규정하여 일감몰아주기 규제를 무력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공정거래법 상의 규제는 공정위의 적극적 법해석과 엄정한 법집행이 담보되어야 실효성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런데 이번 일감몰아주기는 규제는 적용제외 사유를 상위법령에, 그것도 지나치게 광범위하게 열거함으로써 공정위의 손발을 묶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했고, 결국 법문상으로만 존재하는 '무늬뿐인 규제'로 전락할 상황에 봉착했다.
일감 몰아주기 규제가 경제민주화의 상징이 된 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총수일가의 부당한 사익편취를 억제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중소기업 및 자영업자의 공정한 생태계를 조성하자는 것이었다. 총수일가의 사익편취를 근절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일감 몰아주기가 주로 중소기업 및 자영업자들이 밀집되어 있는 서비스 업종에서 빈번하게 발생한다는 점에서 후자의 의미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은 '대기업 옥죄기'는 경제 살리기에 역행한다는 것을 빌미로 일감몰아주기 규제를 무력화시킴으로써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의 열악한 현실에는 눈을 감아버렸다. 대기업을 살리기 위해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를 죽이는 것이 과연 경제 살리기인가.
최근 박근혜 정부는 스스로 복지공약을 포기했다는 비난을 받는 와중에 경제민주화 포기도 공식화했다. 복지공약은 돈이 없어서 못한다고 하지만, 도대체 돈 한 푼 안 드는 일감몰아주기 규제는 왜 포기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야 말로 출범 7개월 만에 드러난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의 '대국민 사기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