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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재판부, 김승연 한화 회장 집행유예 생각마라

[재경일보 김동렬 기자] 최근 서울고등법원 형사4부는 회사자금 수백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기소된 SK 최태원 회장에 대해 징역 4년을 선고한 원심을 유지했고, 1심에서 무죄로 풀려난 최재원 부회장에 대해서는 횡령을 공모한 것으로 판단해 원심을 깨고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한편, 하루 전날 열린 한화 김승연 회장의 상고심에서 대법원 제1부는 '원심의 법리 오해와 사실관계 파악에 잘못이 있다'며 파기환송했다.

최태원 회장의 항소심 판결은 양형기준을 준수하고 원칙을 지킨 판결로 볼 수 있다. 재판부는 계열사 자금 465억원을 빼돌려 펀드 투자에 사용한 혐의로 기소된 최태원 회장에 대한 항소심에서 1심과 같이 징역 4년을 선고했고, 1심에서 무죄로 풀려난 최재원 부회장에 대해서도 혐의가 인정된다며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사실상 1심에 비해 피고인들의 책임을 엄중하게 물은 것이다.

이는 양형기준에 따른 엄중한 선고라기보다는 재판부에서 나름의 원칙을 준수한 것이라고 본다. 현행 '횡령·배임죄에 대한 양형기준'에 따르면, 횡령금액 300억원 이상일 경우 기본 양형구간 5~8년, 감경구간 4~7년으로 제시하고 있다. 즉, 횡령금액이 300억원을 초과한 최태원 회장에 대해서도 감경사유가 적용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문제는 지난 4월15일 선고된 한화 김승연 회장에 대한 항소심 판결이다. 당시 재판부가 유죄로 인정한 배임금액이 1800억여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징역 3년을 선고해 1심보다 감형했다. 이것은 법관의 재량을 최대한 인정하더라도 현재 양형기준 상 불가능한 선고이다.

김승연 회장의 항소심 재판부가 양형에 관한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지난주에 열린 상고심 선고에서 김승연 회장에 대한 배임금액의 엄격한 재산정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파기환송한 점에 비추어 본다면, 파기환송심에서 김승연 회장에 대한 집행유예의 가능성도 열려 있다. 즉, 최태원 회장에 대한 양형이 엄격하다는 재계의 비판은 사실이 아니며, 비판받아야 하는 것은 김승연 회장 항소심 재판부이다.

또한, 최태원 회장 항소심 재판부가 2008년 사면 이후 최태원 회장이 다시 불법행위를 저지른 것을 양형에서 참작한 것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재판부는 최태원 회장에 대해 '배임혐의 등으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2008년 사면·복권된 적이 있다. 이번 사건으로 미뤄 또다시 법행을 저지르지 않을까 의구심이 든다'고 언급했는데, 이는 '사면권의 남용' 내지는 '무용성'을 법원이 확인한 중요한 사례라 평가할 수 있다.

재판부는 최태원 회장이 SK그룹 임직원을 동원하여 조직적으로 증거인멸과 위증을 하게 한 것을 문제로 지적했다. 즉, SK가 변호인 등과 대책회의를 열고 허위논리를 개발하고 임직원들로 하여금 조직적으로 증거인멸과 위증을 하게 만든 점을 재판부가 지적하고 있는데, 이는 재벌 사건에서 매우 중요한 점이다. 과거 삼성에버랜드 사건 등에서도 삼성의 변호사들과 임직원들이 조직적으로 대응한 점에 대해 김용철 변호사가 지적한 바 있는데, 재판과정에 법원을 '농락'하는 행위에 대해 법원이 특별히 문제 삼은 적은 없다.

이러한 행위는 사법질서의 근간을 흔드는 것으로, 단순히 변호권 내지 방어권을 넘어서서 새로운 불법행위 내지 범죄행위(특히 총수 개인의 범죄에 관해)를 조직적으로 저지르는 관행은 총수들의 사익추구 행위와는 별개의 기업범죄로서 엄중히 처벌되어야 할 사안이다. 또 변호사들이 위증과 증거인멸에 대해 적극적으로 가담했다면 이는 범죄행위로서 처벌받아야 마땅하다.

김원홍의 증인채택을 둘러싸고 SK 측과 재판부 간 논란에 대해 법원이 원칙적인 입장을 고수했다. 재판부는 김원홍의 증인채택과 변론재개신청을 모두 기각했는데, 여기에 대해 SK 측은 김원홍에 대한 증인신문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심리절차상 중대한 문제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증인신청 채택 여부는 소송지휘권을 가진 재판부의 고유권한이다. 김원홍이 SK 측과 암묵적인 협의를 한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 재판부가 소송기록과 증거에 비추어 피고인이 신청한 증인의 신빙성이 없다고 보아 증인채택을 하지 않은 것은 절차상 위법이 있다고 볼 수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 김원홍의 증인신청으로 또다시 재판에 혼란을 줄 것이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재벌 사건이라고 해서 특별히 재판부가 눈치를 봐야한다는 논리 자체가 문제가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최태원 회장 항소심 선고는 법과 원칙에 따른 정당한 선고였다고 평가한다. 이는 과거 재벌총수의 형사사건에 대해 별다른 이유 없이 감형하고 집행유예를 선고하던 관행과는 분명히 달라진 것이다.

다만 이를 법원 전체의 변화로 보기는 어렵다. 보다 많은 금액에 대한 횡령혐의가 인정된 한화 김승연 회장에 대한 항소심 선고에서 여전히 양형기준을 벗어난 감형이 이뤄졌고, 파기환송심에서 감형 내지 집행유예 가능성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김승연 회장의 파기환송심은 재벌총수에 대한 법원의 인식변화가 이루어졌는지 가늠해 볼 수 있는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법원의 엄중한 판단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