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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KT·포스코, 낙하산 언제까지

[재경일보 김동렬 기자] 최근 KT 이석채 회장이 사의를 표명한 가운데 포스코 정준양 회장도 사임할 뜻을 밝혔다고 보도되는 등 민영화 공기업의 CEO 교체와 관련된 소식이 계속 나오고 있다.

정권교체에 따른 민영화 공기업·금융지주회사 등의 CEO에 대한 이른바 '코드가 맞추기 인사' 구태가 또다시 재연되는 것에 대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2009년 1월 KT에 이석채 회장이 신규선임되고 이후 김은혜 前 청와대 대변인이 그룹 콘텐츠전략담당 전무로 선임된 것에 대해 낙하산 인사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또 2009년 초 포스코 정준양 회장 선임에 대해서도 당시 박영준 국무총리실 국무차장 등이 개입해 영향력을 행사한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KT와 포스코에 대해 단 한 주의 주식도 보유하고 있지 않은 정부가 아무런 근거 없이 이들 '낙하산 인사'를 임명하고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절차적인 측면이 문제가 됐다.

현 정부 들어서도 상황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 이들 기업 CEO의 임기가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권 눈치 보기'에 따라 사임 의사를 표명했으며, 항간에 떠들던 소문이 현실화된 것을 단지 오비이락으로만 치부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는 CEO 선임이 기업경영의 연속성이나 이해관계자들의 이익을 벗어나 정치적 고려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반시장적인 작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민영화된 공기업, 금융회사 등의 CEO 자리가 정권에 따른 논공행상용 전리품으로 전락한다면, 다음 정권 들어서도 이러한 구태는 또 재연될 수밖에 없다. 지금이라도 이러한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최우선 과제는, 해당 기업들 스스로가 정부의 소위 '낙하산 인사' 여지를 제거할 수 있도록 'CEO 승계 프로그램'을 정착시켜나가는 것이다. 정부로부터의 외압이 빈번한 이른바 '주인 없는 기업들', 예컨대 민영화된 공기업이나 소유분산이 이루어진 금융지주회사 등의 회사는 필히 이사회를 중심으로 CEO 후보군 발굴·육성·홍보하는 등의 장기적인 CEO 승계 프로그램을 마련할 것을 제안한다.

현재 미국의 경우 NYSE 상장규정에서 CEO의 임면·성과평가·승계와 관련된 정책과 절차·기준·권한 및 책임·보고체계 등을 담은 종합적인 시스템을 마련해 공시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시장에서도 CEO 승계가 단순한 회사 차원의 최고위 임원 선임 문제가 아닌 지배구조 리스크의 한 형태로 인식되고 있다. 이에 CEO 승계 프로그램은 내부 임원들 간의 분쟁을 예방하고 정치권이나 감독당국의 외압을 최소화할 수 있는 유일한 장치라 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CEO 승계 프로그램에 따라 적합한 인사가 선임되었음을 시장에 알리는 노력 역시 필요하다.

한편, 개별 기업의 CEO 승계 프로그램이 작동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정권 차원의 결단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과거 이명박 정부에서도 정권 초 공기업 CEO에 대해 일괄적으로 사표를 받은 후 정권과 코드가 맞는 인사들로 그 자리를 모두 채웠고, 금융지주회사에 대해서도 정권의 최측근 인사를 CEO로 교체하는데 성공한 바 있으며, 이후 이들 회사의 사외이사직까지 친정권 낙하산 인사를 내려보냈다. 현재 박근혜 정부의 경우, 아직 노골화된 것은 아니지만, 전 정권의 낙하산 인사를 바로잡겠다는 명분하에 구태가 재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악순환은 해당 기업의 지배구조와 경영성과를 악화시키는 것을 물론 낙하산으로 내려간 인사의 비참한 말로를 초래할 뿐이며, 궁극적으로는 해당 정권을 실패한 정부로 평가받게 할 것이다.

이제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끊는 지혜와 결단이 필요할 때다. 박근혜 대통령은 작년 대선 캠페인 과정에서도 그리고 취임 이후에도 낙하산 인사 근절을 거듭 강조한 바 있다. 유권자들은 그 약속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지금 이 시점에서 유권자에 대한 약속을 저버리고 대선 공신들에게만 고용을 창출해주는 것이 과연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과거 정부의 실패를 교훈 삼아 다시 한 번 신중하게 결정하기를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