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가 임원 개인별 보수를 공시하도록 한 개정 자본시장법에 따른 세부 시행방안을 발표했다. 이 방안에 따르면, 연간 5억원 이상의 보수가 지급된 등기임원에 대해 당해 연도에 지급 또는 실현된 보수를 소득세법상 근로소득, 퇴직소득, 기타소득으로 구분해 기재해야 하며, 오는 29일 이후 공시되는 사업보고서(분·반기보고서 포함)부터 적용된다.
하지만 세부 시행방안을 볼 때, 금융위가 임원 개인별 보수공시의 취지를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지부터 묻고싶다.
지난 4월3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임원 개인에게 지급된 보수가 5억원 이내의 범위에서 시행령으로 정하는 금액 이상인 경우 임원 개인별 보수와 그 구체적인 산정기준 및 방법'을 공시하도록 했다. 이는 현행 자본시장법에 따른 임원 보수 공시가 '임원 모두에게 지급된 보수의 총액'을 사업보고서에 기재하도록 하고 있어 임원 개개인의 보수, 특히 최고경영자(CEO)의 보수 등은 전혀 확인할 수 없는 등의 문제에 따른 것이었다.
임원 개인별 보수공시가 이루어질 경우 임원의 보수가 경영성과에 연동되는지에 대한 주주의 감시 및 통제를 통해 유능한 임원의 선임과 성과에 따른 보상체계의 구축을 도모할 수 있고, 지배주주나 최고경영자가 임원보수 책정 과정에 자의적으로 개입해 왜곡된 유인체계를 형성하는 것을 차단할 수 있다. 또한 임원 개인별 보수내역은 회사 경영전략에 대한 중요한 판단 자료로서 주주와 투자자의 합리적인 선택을 돕는 등의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따라서 금융위는 이러한 제도 도입의 취지를 살릴 수 있도록 보수책정의 세부 기준과 절차를 정했어야 하지만, 이번 세부 시행방안은 '기업에게 불필요한 부담을 주지 않아야 한다'는 명분하에 사실상 가십성 기사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없는 형태로 마련된 것으로 확인돼 실망스럽다.
당장 법에는 '임원 개인별 보수와 그 구체적인 산정기준 및 방법'을 공시하도록 하고 있지만, 세부 시행방안에는 이에 대한 세부적인 사항을 전혀 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법에 정한 '구체적인 산정기준 및 방법'의 의미 자체도 왜곡하고 있다.
금융위 보도자료를 보면, '보수의 산정기준 및 방법 관련'의 필수사항으로 '보수총액이 산출된 내역을 소득세법상 근로소득, 퇴직소득, 기타소득으로 구분하여 기재하는 것'이라고 밝힌 뒤, 자율사항으로 '보다 세부적인 보수 산정기준 및 방법은 회사 자율적으로 기재'하도록 하고 있다. 결국 이번 세부 시행방안은 보수의 구체적인 내용(항목) 공시만을 강제하고, 보다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산정기준과 방법의 공시는 회사 자율에 맡긴 것이다.
임원 개인별 보수공시 제도의 취지는 누가 얼마를 받고 있는지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임원 개개인의 성과를 측정하는 기준, 성과에 연동해 보수를 책정하는 기준, 이를 정하고 집행하는 절차를 공시하도록 함으로써 회사 임원의 유인체계를 합리적으로 조율하기 위한 것이다. 다시 말해, 회사 임원이 지배주주에게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와 주주에 충성하도록 유도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이번 세부 시행방안은 그 기준과 절차의 공시를 회사 자율에 맡김으로써 사실상 임원 개인별 보수액만을 공시하는 제도로 전락해버릴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이는 금융위가 법개정의 취지를 전혀 인식하지 못했거나 의도적으로 왜곡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밖에 없다.
공시 대상이 되는 보수를 급여·상여금·퇴직위로금 등 명칭과 형태를 불문한 세법상 근로소득, 퇴직소득, 기타소득으로 구분해 기재하도록 했지만, 주식매수선택권(스톡옵션)의 경우 그 권리를 행사해 이익이 실현된 경우에만 보수총액에 합산하도록 하고, 미행사 스톡옵션은 부여 현황만을 기재하도록 했다.
하지만 기업회계기준에 따르면, 스톡옵션이 행사되지 않은 경우에도 그 비용을 추계하여 매 회계연도마다 손익계산서에 반영하도록 하고 있다. 이는 스톡옵션이 행사된 시점에서만 그 비용을 반영할 경우 기업의 부담을 정확하게 나타내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비록 미행사 스톡옵션의 이익은 실현된 것이 아니지만, 당해 임원과 회사는 그 금액을 정확히 알 수 있고 또 임원 스스로가 행사시점을 선택할 수 있으므로, 이는 임원의 유인체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점에서 미행사 스톡옵션에 따른 비용도 보수총액에 합산하는 것이 제도 도입의 취지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개정 자본시장법은 임원 개인별 보수가 '5억원 이내의 범위에서 시행령으로 정하는 금액 이상인 경우'를 공시대상으로 정했는데, 이번 세부 시행방안은 이를 법과 동일한 '5억원 이상'의 보수를 받는 등기임원에 한해 적용하도록 함으로써 그 대상자를 최소화했다. 이는 금융위가 제도의 시행에 따른 운용의 묘를 살리기보다는 세부 시행방안 추진 배경에서 밝힌 바와 같이 새로 도입된 제도가 기업에게 불필요한 부담을 주지 않도록 하는 데에 더 신경을 쓴 것이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임원 개인별 보수 공시가 도대체 기업에 어떤 부담을 주는지 금융위에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이번 금융위가 마련한 임원 개인별 보수공시 시행방안은 법에서 정한 취지를 왜곡했을 뿐만 아니라 금융당국이 스스로 제도의 실효성을 떨어뜨리는 방안을 모색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임원 개인별 보수공시의 목적은 임원별 보수의 순위를 매기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임원의 성과에 따른 적절한 보상이 이루어졌는지 판단하고 임원의 유인체계를 회사 전체의 이익과 일치시키는 데에 있다. 따라서 단순히 보수의 내용을 공시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으며, 보수책정의 기준과 절차 및 성과지표 등이 모두 공개돼야 실효성을 확보할 수 있다.
따라서 금융위는 임원 개인별 보수공시의 취지를 제대로 살릴 수 있도록 이사회 산하 보상위원회 설치를 의무화하고, 성과측정 및 보수산정의 구체적 기준과 절차를 마련해 공시하도록 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할 것을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