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은 환율의 절대적 수준보다는 떨어지는 '속도'에 주목하고 있다. 환율이 점진적으로 하락한다면 수출 기업들이 원가 절감 등을 통해 손익 분기점을 맞출 수 있지만, 하락 속도가 빠르면 대응이 어렵기 때문이다.
단기적으로는 환율의 과도한 움직임(오버슈팅)을 막고, 장기적으로는 내수를 활성화해 경상수지 균형을 맞추는 정부 정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김정식 한국경제학회장(연세대 교수)
올해 1∼4월 경상수지 흑자 규모가 상당히 크기 때문에 원·달러 환율은 지금 수준에서 조금 더 내려갈 가능성이 크다. 경상수지만 놓고 보면 늦어도 하반기에는 1,000원 선이 붕괴될 것으로 본다. 달러 환율과 함께 원·엔 환율도 주의 깊게 살펴야 하는 요소다. 정부는 원·엔 환율 1,000원 이하를 '수출 적신호'로 보는듯하다.
최근 정부가 외환시장에 구두 개입 등을 하는 이유는 달러당 원화가 1,000원 밑으로 내려가면 위험하기 때문이다. 환율이 경상수지에 미치는 영향은 시차를 두고 나타나기 때문에 지금 흑자가 난다고 해서 안심할 수 없다. 내수가 취약한 상황에서 원화 강세로 수출마저 줄어들면 우리 경제는 위기를 겪을 수 있다. 수입 물가가 떨어지면 내수가 좋아질 것이라는 견해도 있는데, 내수 침체에는 구조적 문제가 있기 때문에 환율이 하락한다 해서 부양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앞으로 우리나라도 미국·일본처럼 정책금리에 대한 선제적 안내(포워드 가이던스)를 해야 금리 정책의 불확실성을 줄여야 기업 투자가 늘고 경상수지도 균형을 찾을 수 있다.
◇ 박성욱 한국금융연구원 거시국제금융연구실장
올해 연평균 원·달러 환율을 1,055원으로 전망한다. 시장은 미국의 양적완화 종료 일정에 대해서는 이제 큰 관심이 없다. '제로 금리'를 언제 올릴 것인지가 관건이다. 하반기에 접어들면 금리 인상 시기에 대한 논의가 시작될 것이고, 이는 환율에 선반영될 것이다. 여기에 더해 소비세 인상 결과를 지켜보고 있는 일본이 하반기 추가 양적완화를 결정하면 엔화 가치가 떨어지고, 원화 가치는 더 높아질 수 있다. 하반기 환율은 1,050원대에 머무를 것으로 본다.
환율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은 예전보다 약해졌다. 해외 현지생산이 많아졌고, 수출할 때에는 가격경쟁을 덜 한다. 브랜드나 품질로 경쟁하는 것이다. 원·달러 환율이 빠르게 하락한 것은 사실이지만 글로벌 달러 약세 분위기 속에 환율이 하락한다면 가격경쟁력 조건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 김창배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연말까지 원·달러 환율이 1,000원에 근접할 것으로 예상한다. 일본이 추가 양적완화를 단행할 가능성이 있어 원·엔 환율 1,000원 선도 깨질 것으로 보인다. 경상수지 흑자가 크고 경제성장률이 개선되고 있으며, 외화보유액도 충분해 환율은 계속해서 떨어질 것이다.
기업들은 원·달러 환율 1,050원을 손익 분기점으로 보고 있으므로 환율이 지금 수준을 유지하면 기업 채산성은 당분간 악화할 수밖에 없다. 환율이 서서히 떨어지면 충격이 크지 않다. 그러나 기업들이 수출 계획, 원자재 수입 계획을 미리 세워놓은 상황에서 하락 속도가 빨라지면 문제가 된다. 단기적으로는 오버슈팅을 막을 필요가 있고, 장기적으로는 내수를 활성화해 경상수지 흑자를 줄여야 한다.
◇ 배민근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
원·달러 환율은 장기 균형 수준보다 소폭 높은 상태이기 때문에 추가 하락할 여지가 있다. 경상수지 흑자를 고려하면 1,000원 밑으로 떨어졌어야 하는데 잔액이 600억 달러 가까이 되는 거주자 외화예금이 이를 막아주고 있다. 원·엔 환율도 하반기에 1,000원 아래로 내려갈 것으로 전망한다. 환율이 더 떨어질 위험성을 안고 가야 하는 것이다.
하반기가 되면 미국이 기준금리 인상 논의를 시작하면서 지난해 양적완화 축소 가능성을 시사한 이후 터진 '버냉키 쇼크'처럼 세계 금융시장이 불안해지는 국면이 나타날 수 있다.
국제적 정책 환경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환율과 관련해 정부가 할 수 있는 역할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외환시장 개입 강도를 높이는 듯한 제스처를 취할 필요가 있겠지만, 정책 강도를 높이는 것은 어렵다. 해외 투자를 장려하는 정부 정책이 나올 가능성은 있다.
◇ 이상호 전국경제인연합회 산업정책팀장
하반기 원·달러 환율이 세자릿수로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우려할만한 점은 환율이 지나치게 급속히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환율이 점진적으로 내리면 기업들이 공정혁신 등을 통해 원가를 절감할 수 있지만, 속도가 너무 빠르며 대응이 어렵다.
올해 연평균 환율이 지난 7일을 기준으로 1,061.8원이었다. 지금 수준만 유지돼도 기업들은 손익 분기점에 다다른다는 압박에 시달리게 된다. 영업이익이 적자로 돌아서고, 수출단가를 조정하면 시장점유율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적자를 볼 수는 없으니 수출 단가를 올리면 해외 경쟁력에 타격이 온다는 이야기다.
◇ 이지연 중소기업중앙회 통상정책실 과장
현재 90%가 넘는 중소기업들이 채산성 악화를 경험하고 있다. 지난 7일 94개 업체를 대상으로 조사를 벌인 결과 손익분기 환율은 1,038.1원이고 적정 환율은 1,086.3원이라는 응답이 나왔다.
일부 업체는 이미 손해를 보면서 수출을 하고 있으며, 원가 절감을 하면서 버티는 업체도 있다. 원화 강세가 작년부터 이어졌기에 제3시장에서 일본 제품과의 경쟁이 심해지고 있다. 일본 업체들이 가격을 낮추고 있어 국내 기업들은 가격 경쟁력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