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물을 벗고
임보선
편히 앉아
성자(聖者)되기를 기다렸다
새 날이 밝았는데도
경배하러 오진 않았다
아무도
온몸에 물기를 주어
청동빛으로
녹슬기를 기다렸다
골동품처럼
그러나 다가오진 않았다
아무도
꿈은 날마다 조각이나
어깻죽지까지
수북하게 쌓여 갔다
그래도 치워주는이 없었다
아무도
내가 변하지 않는 한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는 걸
나는 비로소 알았다
내가 세상을 버리는 날까지
거듭거듭 변하기 위해
나는, 나를 버려야 했다
나무가 새 나무 되기 위해
겉옷을 벗듯
굳은 땅 뒤엎어야 새 흙이 되듯
나는, 나를 벗어야 했다
나를 뒤엎어야 했다
나는,
나를 모든 걸 해결해야만 했다
나는, 나를 사랑해야만 했다
나를 벗어야 했다
내 모든 허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