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재건축의 추진에 앞서 오세훈 서울시장이 부동산 시장 교란 행위에 칼을 빼들었다. 개발 기대감으로 집값이 계속 오를 경우 자신이 내세운 민간 주도 공급대책이 흔들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오 시장은 "지난 10년간 막혔던 주택공급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갖고 있지만, 부동산 시장의 안정화 없인 백약이 무효"라고 했다.
▲집값 급등에 투기 일벌백계, "담합,투기 교란행위 단지, 재가발 우선순위에서 후순위로"
오세훈 시장은 29일 '부동산 시장 안정화에 관한 서울시의 의지를 밝힙니다'라는 제목의 발표문을 냈다.
그는 "재개발·재건축의 속도를 조절하면서 가능한 행정력을 총동원해 부동산 시장 교란 행위를 먼저 근절해 나가겠다"고 했다.
오 시장은 투기 수요에 대해 일벌백계로 본보기를 보이겠다고 했다. 그는 "일부 재건축 단지에서 허위 신고, 호가만 올리는 행위, 가격담합 등의 비정상적 사례들이 멈추지 않고 있다"면서 이를 집값 뻥튀기를 노린 '사술'이라고 비난했다.
이미 다운계약 등 허위 신고로 15건의 과태료 처분을 했고, 신고가로 신고한 뒤 취소한 사례 280건, 증여 의심 사례 300건 등의 교란 행위를 적발했다고 밝혔다.
오 시장은 이런 교란 행위가 빈발하는 단지나 입주자대표회의가 연관된 경우 재건축·재개발 우선순위에서 뒷순위로 밀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특히 부동산중개업소들이 가격담합을 주도하고 있다고 보고 적발될 경우 행정처분과 형사처벌 등으로 강력하게 대응하겠다고 했다.
민간 재건축의 과도한 개발이익 사유화에 대한 비판을 의식해 사회적 기여를 유도하기 위한 당근책도 내놨다. 기부채납이나 임대 등 공공기여를 높이는 단지는 추가 용적률 제공, 층높이 제한 완화 등의 인센티브를 주겠다는 것이다.
서울시는 최근 재건축발 가격 상승에 제동을 걸기 위해 압구정동과 목동, 여의도, 성수동 등 4곳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했으나 집값 불안은 진정되지 않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의하면 4월 넷째 주(26일 기준) 서울 아파트값은 전주 대비 0.08% 올라 지난주와 같은 상승률을 보였다.
재건축 기대감이 높은 상계동·중계동·월계동이 포진한 노원구는 0.16% 뛰었고, 송파구·강남구·서초구는 0.13%, 영등포구와 양천구는 0.10% 상승해 평균을 웃돌았다.
▲전문가 "행정력으로 가격 상승 억제엔 한계"
전문가들은 오 시장이 재개발·재건축을 서두르다가는 자칫 게도 구럭도 다 잃을 수 있기에 속도 조절과 투기 단속은 바람직한 선택이라고 평가했다.
심교언 건국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4년 임기가 보장된 시장이라면 개발 추진으로 초기에 집값이 오르더라도 충분한 공급을 통해 후반기에 안정시킬 기회가 있지만 오 시장에겐 그럴 기회가 없다"면서 "집값 급등세가 계속될 경우 내년 선거가 힘들어진다는 점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최근 집값이 오르면서 화살이 날아오자 공급은 늘리되 투기는 용인하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부동산 시장에 과도한 기대를 접으라고 경고한 것이 아니겠느냐"고 했다.
심교언 교수는 "재개발·재건축 기대효과가 있는 한 어떤 투기 근절책을 내놔도 시장이 반응할 것 같지 않다"면서 "행정력을 동원한 가격 안정책은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고종완 원장도 "정부가 지난 4년간 온갖 투기 근절책을 동원했으나 집값 억제에 성공하지 못했다"면서 "오 시장이 의지를 갖는다고 해도 개발 기대감을 억누르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