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한시 배제 추진으로 시장에는 양도세 절세 매물이 점차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양도와 부담부 증여를 놓고 고민하는 다주택자들도 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일단 다주택자들이 매물을 내놓더라도 새 정부가 규제완화 등 명확한 부동산 정책을 공개할 때까지 극심한 눈치보기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며 "집값과 정책 변화에 따라 다주택자들의 행보도 달라질 것"으로 예상했다.
▲매도냐, 부담부 증여냐 고민하는 다주택자들
10일 세무업계에 따르면 인수위가 지난달 31일 다주택자의 양도세 중과를 1년간 한시 배제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하면서 보유 주택 수를 줄이려는 다주택자의 문의가 줄을 잇고 있다.
매도시 양도세 절감 효과에 대한 문의가 다수인 가운데 전세를 낀 주택을 자녀에게 넘기는 부담부 증여를 함께 저울질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현 상태에서 10억원짜리 주택을 6억원의 전세를 낀 채 부담부 증여를 한다고 가정할 경우 자녀는 전세보증금을 뺀 4억원에 대해 증여세를 내면 되지만, 부모는 전세보증금(부채)를 자녀에게 넘기는 만큼 보증금 6억원 대한 양도세를 내야 하기 때문이다.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가 한시 유예되면 부담부 증여시 부모의 양도세도 일반 세율로 낮아져 세금을 크게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
2주택자인 김씨가 2006년 2월 5억8천만원에 취득한 A주택을 18억원에 매도하는 경우를 가정해보자.
연합뉴스가 신한은행 WM컨설팅센터 우병탁 부동산팀장에 의뢰해 양도세를 분석한 결과 2주택자인 김씨가 현재 기준으로 A주택을 18억원에 팔면 양도세가 일반세율에서 20%가 중과돼 7억7천87만원(매입 당시 취득세와 매입·매각 시 법정중개수수료 포함)을 양도세로 내야 한다.
그러나 양도세 중과 한시 배제 시기에 팔면 양도세율이 일반세율로 줄어들고, 조정지역내에서 받지 못했던 장기보유특별공제 혜택(최대 30%)까지 살아나면서 양도세가 3억4천192만원으로 지금보다 55.6% 줄어든다.
김씨가 이 집을 팔지 않고 전세보증금 7억원을 낀 채 성인 자녀에게 당장 증여한다면 김씨는 7억원에 대한 양도세로 2억7천716만원(매도시 중개수수료는 없음)을 부담해야 한다.
하지만 앞으로 양도세 중과가 유예되면 양도세가 1억1411만원으로 중과 때보다 1억6천만원(58.8%) 이상 줄어 이득이다.
다만 자녀는 증여로 인한 취득세 8522만원과 증여세 2억5200만원 등 총 3억3742만원을 내야 한다.
우병탁 팀장은 "김씨의 양도세와 자녀의 증여세 및 증여취득세를 합한 총액은 4억5153만원으로 일반 매도시 내야 할 양도세(3억4192만원)보다 1억원 이상 높지만, 증여세는 추후 상속으로 발생할 세금이고 다른 재산이 많은 경우 더 큰 금액을 상속세나 증여세로 내야 할 수도 있어 이번 기회에 사전 증여를 검토하는 다주택자들도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양도세율이 30%나 중과되는 3주택자 이상 보유자들은 2주택자보다 양도세 절감 효과가 더 크다.
3주택자인 이씨가 같은 조건으로 A주택을 매도한다고 가정하면 현재 양도세는 9억53만원에 달하는데 양도세 중과가 배제되면 3억4192만원으로 무려 62%를 절감할 수 있다.
이씨가 만약 이 집을 자녀에게 증여한다면 이씨는 보증금 7억원에 대한 양도세로 현재 3억2801만원를 내야 하지만 유예 기간에는 1억1411만원으로 65.2% 줄일 수 있다.
자녀가 부담해야 할 증여세(2억5200만원)와 증여취득세(8522만원)는 2주택자인 김씨와 같다.
▲서울 아파트 매물 증가세…"집값·정책 따라 매도, 증여, 버티기 결정"
전문가들은 현 정부의 다주택자 규제 정책으로 인해 지난 수년간 상당수 증여가 이뤄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새로 자녀가 성년이 된 경우를 포함해 이번 양도세 중과 유예 기간 내에 부담부 증여를 택하는 다주택자들도 여전히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
김종필 세무사는 "그간 보유세 부담이 컸던 다주택자들이 매도시 양도세 감면 효과에 대해 문의를 많이 해온다"며 "일단 그간 보유세에 짓눌렸던 다주택자들은 매도 가능성이 크지만, 이중 무주택인 성년 자녀가 있는 일부는 부담부 증여를 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문가들은 특히 새 정부의 부동산 규제 완화에 대한 기대감으로 집값이 오를 가능성이 크다고 보거나 반대로 매물이 많이 나와 가격이 떨어져 제값을 받기 어렵다고 판단하는 경우는 버티기에 들어가거나 증여를 선택하는 사례가 많을 것으로 보고 있다.
국민은행 박원갑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공약을 보면 다주택자에게는 매도, 증여 또는 임대사업자 등록까지 세 가지 길이 열린 셈"이라며 "다주택자들이 여러 선택지를 놓고 고민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단 시장에는 인수위의 양도세 중과 한시 배제 방침 이후 매물이 늘고 있다.
부동산빅데이터업체 아실에 따르면 최근 일주일새 서울 아파트 매물 증가폭은 3.4%로 전국 최고를 기록했다.
이날 현재 서울 아파트 매물 건수는 총 5만3362건으로, 일주일 전(5만1585건)보다 1777건 증가한 것이다.
이 가운데 종로구가 일주일 새 7.0%로 가장 많이 늘었고 강북구(6.9%), 송파구(6.3%), 마포구(5.4%), 양천구(5.1%), 강서구(5.0%), 용산구(4.3%), 서초구(3.7%), 강남구(3.6%) 등 최근 대선 이후 호가가 오른 강남권까지 매물이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반면 서울시내 아파트 전월세 물건은 이날 기준 4만2959건으로 일주일 전보다 1.1% 줄어 전국 최고 감소폭을 기록했다.
최근 전세자금대출 재개로 급전세가 대거 소진되고 있는 가운데 일부 집주인들은 양도세 중과 한시 배제를 틈타 매도를 하기 위해 전월세 물건을 거둬들인 영향도 있다는 게 현지 중개업소들의 설명이다.
서초구 잠원동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일단 집주인들은 대부분 시세보다 높은 가격을 요구하고 있지만 점차 매물이 늘어나고, 보유세 기산일인 6월 1일 전인 내달 말까지 잔금을 치르거나 등기 이전을 희망하는 다주택자 가운데 일부가 시세보다 낮은 급매로 처분에 나서면 집값이 일시 하락할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특히 '똘똘한 1채' 선호 현상이 짙어지면서 강남보다는 양도차익이 적은 강북 등 비강남권이나 인천·경기 등 수도권 외곽, 지방 조정대상지역 내에서 절세 매물이 더 많이 늘어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했다.
노원구 상계동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이번 기회에 시세보다 싸게라도 처분하겠다는 다주택자들이 물건을 내놓고 있다"며 "강남과 달리 아직 호가가 뛰는 분위기는 아니다"고 말했다.
우병탁 팀장은 다만 "대출 금리가 오르고 있는 데다 갭투자 수요도 줄어든 상태여서 매물이 나와도 거래가 얼마나 활성화될지는 미지수"라며 "다주택자들이 집값 변동과 정책 변화에 따라 매도 또는 증여, 버티기를 결정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