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달러화의 초강세로 부채가 많은 국가가 더 큰 위험에 처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다른 나라들의 경제 여건이 미국에 비해 취약한 탓에 투자자들이 미국 시장으로 쏠리는 것도 강달러 현상의 배경으로 꼽힌다. 미국의 주식과 채권 시장에 외국 투자자들의 자금이 유입되는 것이 달러 강세를 부추긴다는 설명이다.
이머징마켓은 물론 유럽과 같은 선진국도 강달러의 여파에 고스란히 노출된 상태지만, 상대적으로 순수출국들은 큰 위험을 겪지 않을 수도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2일(현지시간) 진단했다.
신문에 따르면 16개국 통화 대비 미 달러화 가치를 측정하는 WSJ 달러지수는 올해 상반기 8.7% 올라 2010년 이후 최대폭 상승했다.
7월 들어서도 전날까지 WSJ 달러지수는 1.4% 추가 상승한 것으로 집계됐다.
경제 불확실성 속에 투자자들이 달러화에 쏠리면서 이머징마켓의 통화들은 커다란 하방 압력을 받고 있다. 심지어 유로화조차 지난주 '패리티'(1유로=1달러)가 깨져 1달러 아래로 내려가는 등 2002년 이후 20년 만에 가장 약세를 보였다.
강달러의 가장 큰 원인은 미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가파른 금리인상이다. 연준은 지난달 28년 만에 처음으로 '자이언트 스텝'(한 번에 0.75%포인트 금리인상)을 단행한 데 이어 7월에도 같은 수준의 기준금리 인상을 예고했다.
국제금융협회(IIF)는 이머징마켓에서 지난달 40억달러의 자금이 순유출된 것으로 추산했다.
중국을 제외한 이머징마켓의 순유출 규모는 과거의 거시경제 위기들 때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로빈 브룩스 IIF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밝혔다. 다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초기보다는 아직 낮은 수준이다.
이 중 외화 표시 채권을 발행한 나라들은 자국 통화 가치가 절하돼 갚아야 할 채무가 실질적으로 늘어나면 더욱 위험해질 수 있다.
부채 위기와 인플레이션의 '콤보' 충격으로 지난 5월 디폴트에 빠진 스리랑카가 대표적인 사례다.
달러 표시 부채가 많은 나라도 위기의 진원지가 될 수 있다.
IIF에 따르면 아르헨티나, 우크라이나, 콜롬비아와 같은 나라들의 달러 표시 부채는 자국 국내총생산(GDP)의 20%를 넘어선 반면, 아시아와 유럽의 일부 국가는 그 비율이 2% 미만에 그친다.
마르셀루 에스테바우 세계은행 글로벌 거시경제·무역·투자 국장은 "달러 표시 부채가 큰 모든 나라가 걱정거리"라고 말했다.
따라서 각국 정부는 외화로 자산을 보유함으로써 자국 통화 절하에 대한 리스크를 헤지할 수 있다고 WSJ은 지적했다.
사하라 사막 이남의 경제 규모가 작은 아프리카 국가들은 여전히 취약한 상황이지만, 수입보다 수출을 많이 하는 순수출국들은 미 달러화에 대한 접근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강달러 현상을 잘 넘길 수 있을 것이라고 신문은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