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을 바탕으로 자개를 현대의 예술품으로 창조하는 여백(如白) 김영준 작가를 양평 나전칠기미술관에서 만났다.
김영준 작가는 전통 나전칠기에 현대적인 디자인과 공예의 특징을 살려 새로운 예술품으로 재탄생시키는 나전칠기 작가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사용하시던 자개장롱의 영롱한 빛을 보며 자란 작가는 아름다운 빛에 매료되어 지금의 나전칠기 명장이 됐다.
자개가 아름다운 빛을 띠기 위해서는 전복과 조개, 소라 등 버려진 껍데기를 가공한 뒤 옻칠을 하는 과정을 거친다. 어떤 재료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자개의 빚이 달라지기 때문에 직접 재료를 골라 사용한다.
자개 색은 빛의 각도에 따라 전혀 다르게 보이므로 더욱 매혹적이다. 이러한 자개의 독특한 특성에 작가만의 현대적인 감각이 더해져 영롱한 빛의 새로운 예술품이 탄생 된다.
나전칠기 명장이 되기 전 그는 잘 나가던 여의도의 ‘증권맨’이었다. 3년간 매주 월요일 아침마다 MBC ‘출발 라디오 행진’에서 주식 전망과 투자전략을 소개할 만큼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주가가 급변하면서 주식시장이 침체 될 가능성이 크다는 판단하에 사직서를 과감히 던진다. 얼마 뒤 우리나라는 IMF 외환 위기를 맞게 되고 그가 재직하던 동서증권은 부도난 뒤 문을 닫게 된다.
‘남들이 가는 길 반대에 꽃길이 있다’는 말을 평소 마음속에 새기고 살던 그는 퇴사 후 많은 가구 종사자들이 문을 닫기 시작하는 나전칠기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공장 대표인 친구가 미적 감각이 뛰어난 작가의 재능을 높게 사서 식탁 디자인 업무를 맡긴다.
이때 수십 년씩 나전칠기 작업을 해 온 전문가들을 만나 나전칠기 작업의 노하우도 익히게 된다.
그는 전문적인 디자인 공부를 위해 미국 LA 디자인아트센터로 유학을 떠난다. 귀국 후 나전칠기 가게를 내지만 재산을 다 날릴 만큼 크게 실패한다. 파산 직전에 이르게 된 그는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 택시기사를 하다가 교통사고를 당하기도 한다. 그는 생각의 방향을 틀어 2005년부터 가구 제작에서 예술품 제작으로 바꾼다.
이탈리아 디자인학교 도무스아카데미에서 2년간 디자인을 배운 후 일본 가나자와 대학교의 옻칠 장인에게서 옻칠과 정제 기술까지 배운다. 이러한 각고의 노력으로 김영준 작가는 우리나라 최초의 옻칠 정제 특허를 받은 인물이 된다.
김영준 작가는 밀라노와 파리, 런던 등 해외에서 매년 3~4차례씩 전시회를 연다. 2007년 프랑스 파리 전시회 때는 메종 앤 오브제이 박람회 참가한 후 파리의 파크 하얏트 호텔에서 다시금 그의 작품들을 전시하게 된다. 우연히 그 호텔에 머물던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주 빌 게이츠가 전시장을 찾아와서 ‘초충도’와 ‘코스모스’ 등 작품 4점을 구매해간다. 그해 12월에는 마이크로소프트사의 게임기 ‘X박스’에 자개를 붙여달라는 요청을 받게 된다. 2008년 빌 게이츠로부터 자개 작품을 선물 받은 스티브 잡스의 애플에서도 자개로 아이폰 케이스를 만들어달라는 특별한 요청을 받으며 크게 주목받기 시작한다.
2014년 8월에는 한국을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의자를 제작한다. 그는 의자 전체를 까맣게 옻칠하고 등받이에는 교황 문양, 손잡이 부분 등에는 자개를 박은 아주 소박한 의자를 제작한다. 이 의자는 교황의 소박한 성품과 꼭 맞아 김영준의 작품이 채택되어 또다시 세계적인 관심을 받게 된다.
김영준 작가는 현재의 위치에 머물지 않고 남들과 다른 늘 새로운 변화를 추구한다. 남이 가지 않은 길을 찾아 개척하며 창조적인 예술가로서 꾸준한 작업을 한다.
김영준 작가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 ”영롱한 자개 빛의 둥근 작품들은 모두 소우주를 표현한 것이다. 우리 한 명 한 명이 다 소우주이다. 소우주가 모여 대우주가 된다. 여러분들도 영롱하게 빛나는 작품을 보면서 마음이 치유되고 안식을 얻고 소우주인 빛나는 나 자신을 찾길 바란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