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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안전한게 좋다’…중기 대출 ‘외면’, 가계 담보대출 '환영'

지난달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로 시중금리가 하락했지만 중소기업은 은행 대출의 여전히 문턱이 높다며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정부가 금융권 보신주의를 질타하면서까지 중소기업 금융지원 확대를 공언하고 나섰는데도 안전한 담보대출만을 고수하는 관행은 여전하다.

은행은 건전성 유지가 생명이다 보니 부실 위험이 높은 기업에 대출을 확대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항변한다.

◇악화된 중기 자금사정…”대출 양극화 심화"

중소기업 사장 이모(42)씨는 "해외진출 실적 등을 보여줘도 은행에서는 무조건 담보만 요구한다"며 "은행의 보신주의는 현장에서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실감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 추석을 앞두고 지난달 11∼18일 900여개 중소 제조업체를 상대로 실시한 자금사정을 묻는 설문조사에서도 은행 대출의 어려움과 은행권의 '비오는 데 우산 뺏기'를 지적하는 기업들의 원성이 많았다.

경기 지역의 한 업체는 "매출이 감소하자 은행이 경기 등 다른 여건은 전혀 보지 않고 곧바로 신용평가등급을 하향했다"며 "담보를 제공해도 결국 대출금리가 높아졌다"고 하소연했다.

다른 업체도 "일시적으로 1년간 매출이 감소한 것만으로 은행 신규대출은 물론 신용보증기관의 보증도 어려워졌다"고 호소했다.

실제로 중기중앙회의 이번 설문조사에서 자금사정이 좋지 않다고 답한 업체가 47.2%로 작년 추석 전(43.6%)보다 오히려 늘었다.

특히, 자금 사정이 곤란한 주요 원인(복수응답)으로 매출감소(77.7%)를 꼽은 업체가 지난해보다 9.5% 포인트나 증가했다.

경기회복세가 미약한 가운데 중소업체들이 매출감소를 겪자 은행 대출받기도 덩달아 어려워지게 된 것이다.

중기중앙회 관계자는 "기업들 얘기를 들어보면 자금 사정이 좋은 곳은 대출도 원활하지만 사정이 어려운 곳은 대출받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며 "중소기업 대출도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시중은행 ‘담보요구' 보수적 대출행태 여전

일시적으로 자금난에 봉착한 것인데도 은행 돈줄이 막히게 되는 것은 은행들이 기술력이나 장래성은 도외시하고 재무제표에만 의존해 대출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금융위기 이후 중소기업에 요구하는 이런 대출 조건은 더욱 까다로워졌다. 소규모 기업일수록 은행은 더욱 보수적이다.

한 시중은행 임원은 "소기업일수록 재무제표 신뢰성이 떨어지다 보니 은행 입장에서도 적극적인 대출이 어렵다"고 말했다.

매출액이 늘고 이익이 증가해도 담보가 없으면 대출이 불가능한 경우도 빈번하다.

새 정치민주연합 김기준 의원(정무위원회)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중소기업 대출 관련 자료에 따르면 실제로 최근 5년간 시중은행들의 중소기업 담보대출 비중은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2009년 51.5%였던 시중은행 중소기업 평균 담보대출 비중은 2013년 57.3%로 늘어났다. 같은 기간에 중소기업 신용대출은 48.6%에서 42.7%로 축소됐다.

중소기업 대출을 취급하면서 담보와 보증을 요구하는 낡은 관행이 오히려 심화한 것이다.

김 의원은 "많은 중소기업이 발전 가능성 측면에서 우수하지만 담보가 부족해 어려움을 겪는 사례가 많다"며 "특히 중소기업 대출거래에 혁신을 이끌어야 할 대형은행의 보신주의가 더 심각하다"고 꼬집었다.'

◇은행도 수익성 악화 ‘비상'…"기업도 투명성 강화해야"

은행들도 수익률 감소와 건전성 강화가 맞물려 애로사항이 많다는 입장이다.

특히, 예대금리차 축소로 수익률이 떨어진 상황에서 기업 구조조정 영향으로 재무부담 우려가 있어 건전성 관리에 민감하다.

한 시중은행 임원은 "업종마다 편차는 있지만 최근 몇 년간 경기 부진으로 중소기업의 경영 여건이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며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재무여건이나 신용평가등급이 안 좋은 기업에까지 대출을 확대하는 것은 어렵다"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지난 4월 펴낸 한국은행 금융안정보고서도 금융위기 이후 기업 신용리스크 증가로 시중은행이 중소기업에 대해 금리, 담보, 만기 등 자금공급 조건을 차별적으로 불리하게 적용하는 행태가 심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소기업 자금난이 나아지지 않는 상황에서 은행권도 사정이 좋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보니 금융당국이 해법으로 내놓은 돌파구가 기술금융 확대라는 분석도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재무제표만 보지 말고 기술신용평가서도 함께 고려해 적극적인 대출을 유도한다는 것이 기술금융 활성화의 취지"라며 "당장 재무제표는 좋지 않더라도 성장성을 포함해 금융을 지원해줄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반면, 은행들은 기술평가를 통해 성공 가능성이 높은 기술도 실패하는 경우가 많은데, 상대적으로 채무상환 위험이 높은 기술금융을 확대할 경우 대규모 부실을 떠안을 것을 우려해 기술금융 확대에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평가 결과가 정확한지 확신할 수 없어서 기술신용대출은 상당한 위험을 수반한다"며 "중소기업 스스로도 투명성을 강화하려는 노력을 해야 은행도 적극적으로 대출을 확대할 여지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