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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공권력 남용과 기업의 종말

권위주의 체제에서는 공권력이 기업의 생사를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모양이다. 과거 전두환 정권은 미운털이 박힌 국제그룹을 여지없이 해체해 버렸다. 당시 항간에 나돈 국제그룹의 해체사유는 양정모회장이 최고통치권자인 대통령의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민경제적 또는 기업경영상의 이유가 아니라는 것이다.

한진해운은 지난 8월 31일 기업해체의 사전단계인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박 대통령이 “도덕적 해이를 묵인하지 않겠다”는 발언에 맞추어 정부는 한진해운의 대주주가 자구노력을 하지 않아서 3,000억 원의 구제 금융을 지원하지 않았다고 하고 한다. 정부측 말만 들으면 합리적 의사결정인 것처럼 보이고 그럴듯하게 들린다.

그러나 최순실씨 국정농단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 들어나는 정황들에 맞추어 보면 이상한 구석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한진그룹 조양호회장은 평창 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에서 갑자기 물러났다. 국내 유수의 대기업이 10억원 밖에 지원하지 않았다는 것이 조직위원장 사퇴의 이유가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최순씨의 더블루K가 스위스 건설회사인 누슬리와 손잡고 거금 3,000억원짜리 평창동계올림픽 경기장 공사를 따내려고 했으나 조회장이 거부하여 어렵게 된 사실이 있다고 한다. 이 두 가지 사실만으로 조회장은 최순실씨, 그리고 같은 호흡을 맞추면서 일하는 정부 측에 충분히 미운털이 박힐만하다.

권력실세와 통치권자의 미운털이 박혀서 그런 것이 아니라 순수히 경제적 또는 경영상의 사유로 한진해운 청산이 이루어졌다는 주장에는 상당한 무리가 있다. 지난 5월 22일 발간된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의 보고서에 의하면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중에서 하나를 살리고자 하면 한진해운이 유리하다고 하였고, 또 한진해운은 기업의 회생조건중 하나인 해운동맹가입에도 성공하였기 때문이다. 정부는 한진해운에 대한 3,000억 원의 자금지원을 거부해놓고 10월 31일 발표된 해운산업경쟁력 강화방안에서는 선박펀드 조성 등에 무려 6조 5,000억원을 지원한다고 하였다.

이와 같은 결정은 앞뒤가 제대로 맞지 않는다. 특히 한진해운이 퇴출되면서 발생하게 된 엄청난 물류대란과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생각하면 더욱 그러하다. 국민경제에 심대한 영향을 주고 국제적 신뢰에 중대한 손상을 주리라는 것을 모르고 정부가 이런 결정을 했다면 무지한 것이고 알면서 눈을 감고 그런 결정을 했다면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무책임의 극치다.

우리나라에는 언제쯤 공권력에 미운털이 박히면 기업이 망하고 권력의 남용에 의하여 대기업이 하루아침에 문을 닫게 되는 이런 행태들이 사라질 것인가?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정부, 진정한 민주주의가 도래하기를 기다릴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