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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륜 폭로한다"에 공무원들 줄줄이 송금

공무원들에게 무작위로 전화를 걸어 불륜이나 성매매 사실을 폭로하겠다고 협박해 돈을 뜯어낸 60대 남자에게 실형이 선고됐다.

수원지법 형사11단독 김제욱 판사는 공동공갈 혐의로 구속 기소된 김모(62.자영업) 씨에게 징역 1년6월, 같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이모(35.무직) 씨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각각 선고했다고 11일 밝혔다.

판결문에 따르면 이들은 공직자들의 불륜사실을 알고 있는 것처럼 속여 돈을 뜯어내기로 공모했다.

이들은 소속 기관 홈페이지에 이름과 연락처가 노출돼 있는 공직자들이 부적절한 여자관계가 알려지면 신분상 불이익 때문에 겁을 먹어 돈을 뜯어낼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범행대상으로 삼았다.

이들은 신분과 통화내역을 숨기려고 '대포폰'으로 불리는 선불 휴대전화를 구입하는 한편 전단지 부착 아르바이트생 모집광고를 내 이를 보고 찾아온 아르바이트생 명의로 차명 은행계좌까지 개설했다.

이들은 지난해 6월부터 9월까지 국가 및 공기업, 지방자치단체 연구소 연구원과 시.군 공무원 등에게 불륜을 폭로하겠다고 협박전화를 걸어 한 사람당 130만-800만원씩 14명으로부터 4천여만원을 갈취했다.

협박은 간단했다. "정보수집하는 단체인데 당신 여자관계를 알고 있고 여자와 모텔에 들어가는 사진을 많이 갖고 있다. 1천만원을 송금하지 않으면 그 자료를 당신이 다니는 직장과 가정에 알려 망신을 주겠다"는 정도 내용이었다.

아무런 근거 없이 걸려 온 이런 전화에 제발 저린 공직자들이 걸려들었다.

피해자 중에는 국가 연구기관 간부와 수도권 소재 정부 산하기관 연구소 소장이 포함돼 있다.

반면 또 다른 공기업 직원이나 지자체 동사무소 공무원 9명은 협박을 받고도 돈을 보내지 않아 미수에 그쳤다.

경찰에 따르면 돈을 보낸 피해자들은 "잘못한 일은 없지만 구설수에 오르내리는 게 싫어 돈을 줬다"라든가 "사실이 아니지만 소문이 나면 조직에 누를 끼칠 수 있어 송금했다"고 진술했다.

공범 세 명 중 한 명인 또 다른 김모(54) 씨는 지난해 10월 경찰 수사가 시작되자 도주했다.

달아난 김씨는 2002년과 2005년 같은 수법으로 금품을 갈취하다 징역 1년6월형과 징역 3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한 전력이 있다.

그는 2005년 "여자와 함께 여관에 들어가는 모습을 찍었다"는 협박전화를 걸어 지자체 공무원 53명으로부터 1억3천여만원을 뜯어냈다.

불륜을 '미끼'로 벌인 공갈범의 '낚시질'에 해가 바뀌어도 여전히 공무원들이 줄줄이 낚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