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회계업계에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국제회계기준(IFRS:International Financial Reporting Standards) 즉, 국제적으로 통일된 고품질의 회계기준이 요구되는 상황에서 이를 적극적으로 도입, '한국의 회계선진화"를 모색하고 있는 것.
그 중심에는 지난 15일 열린 한국공인회계사회 정기총회에서 압도적인 표 차이로 40대 회장에 재선임된 권오형(63) 회장이 있다.
권 회장은 우리나라의 '회계선진화'는 물론 기업의 투명성을 높임으로써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없애고 국가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열정을 다 바치고 있다.
연임에 성공하면서 '회계선진화'라는 중차대한 책임을 짊어진 권 회장을 만났다. 환한 웃음 띤 얼굴로 기자를 맞아 준 권 회장은 온화하지만 일에 대해서는 투철하면서도 담백한 사명감이 몸에 녹아난 인상이다. 30여년을 공인회계사라는 전문인으로서 걸어온 외곬 인생에 대한 경륜이 묻어난 때문인 듯 싶다.
◆ IFRS 도입으로 국제경쟁력 강화
"우리나라의 회계산업은 국제회계 기준이 적용되면 보다 정확하고 투명해 질 것입니다."
권 회장은 "IFRS는 국제금융사회에서 신뢰와 연결돼 우리 기업들의 가치 또는 이미지를 높일 뿐만 아니라 국제경쟁력 강화에 초석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실제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의 기업경영 투명성과 회계정보의 신뢰성은 국제적으로 매우 심각한 수준으로 평가절하되고 있다. 공인회계사의 전문가적 위상도 떨어지고 회계불투명국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우리기업들이 해외에서 자금을 조달할 때 고율의 이자손실과 주식상장시 할인발행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 원인이 바로 글로벌 기준에 맞지않는 회계제도와 기업 오너들의 의식 수준 때문이라는 것이 권 회장의 지적이다.
권 회장은 '회계선진화'에 대한 의지가 확고하다. 처음에는 어차피 어느정도 혼란은 불가피하지만 일정 기간 적응기를 거치고 나면 오히려 국제적 회계신인도를 높여 쓸데없는 국부 유출도 막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권 회장은 "일부 중소기업들이 아직 도입 준비가 미흡한 상태이지만 올해 안으로 거의 완료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는 "IFRS가 원칙중심의 기준이다 보니 실무적으로 일부 혼선이 있을 수 있으나 시간이 지나면 자연 해결될 것"이라며 "오히려 재무제표 작성의 유연성이 인정돼 회사의 경영 상태를 보다 투명하게 입증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권 회장은 "2011년에는 모든 상장기업과 금융기관들이 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K-IFRS)을 의무적으로 적용해야 한다."며 "따라서 연결재무제표 중심의 공시체제 전환에 따른 연결범위의 시스템 구축을 비롯, 연결 종속기업의 내부통제와 재무보고관리 등의 준비가 필요하고 또 다양한 회계처리에 대한 신속한 의사결정과 방대한 공시량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 IFRS, 기업의 정밀검사 '자금유통 투명화 기여'
'회계선진화'는 사실 공인회계사회의 노력만으로는 이루기 어려운 과제다. 정부, 금융기관, 기업 등 회계시장을 둘러싼 관계자들이 함께 노력해야만 이룰 수 있다. 권 회장은 특히 기업 오너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일부 기업들은 아직도 회사금고가 자기 집의 금고라고 착각하고 정직한 재무제표와 공인회계사의 감사를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 권 회장의 지적이다.
"기업은 개인의 것이 아니라 주주, 나아가 국민의 것이라는 인식의 변화를 바탕으로 국제적 수준의 회계정보를 생산해 이해관계자들에게 제공한다면 우리나라의 회계 투명성을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가 IFRS 도입에 적극적인 이유는 이렇다. 기업의 경쟁력은 자금유통에 달려있다. 즉 자금유통이 쉬운 우량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회계 투명성이 전제돼야 한다는 것. 국제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한 국가가 경쟁력 있는 우대국가로 대접받기 위해서는 회계신인도가 높아야 한다는 것. 즉 IFRS도입은 병원의 'MRI에 의한 정밀검사'와 같은 기업진단 역할을 수행해서 회계투명성 제고에 기여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권 회장은 현재 정책적 차원에서는 국민권익위원회와 회계투명성 제고 공동사업에 관한 업무협약을 체결, '국제적 회계신인도 제고'에 나서고 있다. 또 회계투명성을 국가브랜드위원회의 50개 어젠다 중 하나로 적극 추진하고 있다. 특히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와 협의해 오는 11월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어젠다로도 채택될 수 있도록 추진 중이다.
◆ IFRS 성공적 도입, 교육강화가 핵심
권 회장은 새 회계제도 도입이 성공적으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IFRS 교육'이 강화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현재 IFRS 회계전문가 양성을 위해 금융감독원과 회계기준원, 민간 회계전문가가 중심이 되는 IFRS 질의회신 연석회의가 운영되고 있으나 회계관련 유관기관에서도 유기적이고 통합적인 IFRS관련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전파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한국공인회계사회는 현재 중소상장기업의 IFRS 교육과 관련한 애로를 덜어주기 위해 상장기업 회계담당자를 위한 전국 순회설명회를 개최하고 있다. 'IFRS 지원센터'도 설치 운영 중이다.
새롭게 변화되는 회계기준에 발맞춰 공인회계사들의 교육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현재 국내에는 약 1만5천여명의 공인회계사가 있다. 2001년도부터 매년 1000명 이상 합격자가 배출되고 있다. 이로 인해 다수의 합격자가 실무수습기관에 미처 배정되지 못하는 사태까지 초래되고 있다.
권 회장은 "이같은 실무실습의 부실화로 자본시장의 감시자 역할을 담당해야 하는 공인회계사의 자질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는 등 국가적으로도 많은 부작용이 초래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지난해부터 정부는 '전문자격사 선진화 방안'과 관련, 전문자격사 수가 시장수요에 비해 부족하다고 판단해서 선발인원을 현행보다 더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에 대해 권 회장은 "전문자격사의 선진화는 전문자격사 수만 늘린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우수한 전문 인력 양성과 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추진되야 한다"고 말했다.
◆ 공인회계사, 전문성·윤리의식 갖춰야
특히 권 회장은 대학에서부터 회계학 교육의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IFRS는 원칙중심의 회계기준이기 때문이다. 기술적인 회계처리 위주의 지식이 아닌 보다 이론적이고 논리적인 회계지식이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권 회장은 원칙중심의 회계기준에서는 무엇보다 공정하고 중립적인 관점에서 회계 이슈를 다루어야 하기 때문에 무엇보다 윤리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권 회장은 공인회계사에 있어서 윤리와 도덕은 소금의 짠 맛과 같다고 말한다.
소금이 짠 맛을 잃으면 무용지물이 되는 것처럼 공인회계사가 윤리와 도덕성을 상실하면 사회적인 신뢰를 잃게 되고 결국 존재가치가 없어지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공인회계사가 사회적으로 존경받기 위해서는 자본시장의 감시자라는 확고한 사명감과 투철한 윤리의식, 그리고 전문가적인 적격성을 갖춰야 합니다. 그리고 공정하고 성실하게 특히 전문가로서의 사회적 책임도 다해야 합니다."
권 회장은 공인회계사의 역할을 2가지로 요약했다. 기업을 위한 경찰과 의사의 역할이 그것이다. 기업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정확하게 지적할 줄 알아야 하고, 또 문제가 발생했을 때 제대로 된 처방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권 회장은 "선진국의 척도는 정직과 투명성에 있다. 분실된 물건을 100% 돌려주는 나라가 진정 선진국이다."고 말한다. 즉 "정직한 나라, 투명한 나라의 기준은 '주은 물건'을 얼마만큼 되돌려 주냐에 달려있다."며 "이를 위해 공인회계사들의 역할이 그 어느때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권 회장은 연임되자마자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동분서주하고 있다. 자본시장의 파수꾼으로서의 공인회계사들의 운신의 폭을 넓혀주기 위해서다.
물론 다른 일을 하고 싶을 때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자기가 맡은 분야에서 최고가 된다는 것이 바로 자기 자신 뿐만이 아니라 이 사회를 위하는 가장 빠른 지름길 이라고 강조한다. 권 회장이 그동안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이 몸담고 있는 회계분야의 발전을 위해 마지막 봉사의 길을 택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권오형 한국공인회계사회 회장은…>
- 1946년 충남 부여 출생
- 경희대 경영학과 졸업, 경영학 박사
- 대한상공회의소 감사, 경희학원 감사
- 시민단체(YWCA, 기독교교도소, 홀리클럽)감사
- 삼덕회계법인 대표, 경희대 경영대학원 겸임교수
- 기획재정부 세제발전심의위원회 위원
- 국세청 국세행정위원회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