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싱가폴 식물원 전경. 사진 오른편의 수간이 보이는 나무가 피뢰침이 설치된 알비지아다. |
인천공항과 공항서비스 1,2위를 다투는 싱가폴의 창이 공항에 비행기가 접근할 때 창문으로 내려다보면 싱가폴섬의 동쪽 해안과 그곳 앞바다에 정박하고 있는 화물선과 어선들이 보인다. 창문을 통하여 해안의 관목과 넓은 녹색지대가 나타나므로 싱가폴이 작은 섬이라는 인상을 받기 어렵다. 공항에서 나와서, 깨끗하게 정리된 도로를 따라 시내로 들어가다보면 도로 양옆에 열대의 각종 색깔의 꽃들이 방문객을 맞아준다. 이 꽃들 가운데에는 싱가폴의 국화(國花)인 Orchid(난초)도 들어있다. 싱가폴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Garden City(정원도시)프로젝트를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정경 가운데 하나다.
싱가폴 시내를 동서로 가로 지르는, 넓은 Orchard Road(과수원길)는 도로 양쪽으로 고급 쇼핑센터와 특급호텔들이 마주보고 있고, 인도는 분주히 오가는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이 도로가 서쪽에서 끝나는 지점에서 약 3km 정도를 더 가면 싱가폴이 자랑하는 식물원이 나타난다. 싱가폴을 영국 식민지로 처음 개척한 영국 동인도 회사의 직원인 레플즈(Stamford Raffles)는 세계 각국에서 생육하는 여러 식물을 이곳에 옮겨 심어서, 그 가운데 이곳 토양과 기후에 가장 알맞은 경제식물을 발견하려고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1822년, 오늘날 싱가폴 시내의 중심지역인 포트 캐닝(Fort Canning)에 식물원 겸 식물 생육 실험용 정원을 만들었다. 포트 캐닝은 작은 야산(野山)으로서 식물원의 규모가 커지면서 식물원 장소로서 적당치 않아 식물원은 1829년부터 30년간 폐쇄되었으나, 1859년부터 오늘날의 장소에서 다시 개원(開園)하게 되었다. 포트캐닝은 과거에 식물원이 있던 자리이므로, 오늘날도 이곳 언덕을 오르다보면 수많은 종류의 수목이 자라는 것을 볼 수 있다.
평지인 싱가폴 시내에서 유일한 야산인 포트캐닝은 이름 그대로 전시(戰時)에는 전략적인 요새이다. 그러므로 영국군은 태평양 전쟁이 일어나기 이전에 이미 이곳에 지하요새를 구축하고, 1942년 2월, 사령관 퍼시벌(Arthur Percival)중장은 이 지하벙커에서, 야마시다 도모유키(山下奉文)중장이 지휘하는 일본군과의 전투를 지휘하였다. 전투에서 승리한 일본군은 영국군이 사령부 건물로 사용하던 건물을 일본군 사령부로 사용하였다.
오늘날, 웅장한 이 건물은 싱가폴 시청이 시민을 위한 시민문화센터로 이용하고 있고, 건물옆에 있는 영국군 지하벙커는 일반에 공개하고 있다. 포트캐닝에 식물원이 처음 개원되었을 때는, 대영제국의 세계지배에 필요한 경제 식물(원재료로 사용가능한)을 발견하기 위해, 나무 외에도 경제잠재력이 있어 보이는 과수, 야채, 향료(향료는 나무에서 나온다)도 식재하였다.
1859년에 오늘날 위치로 옮긴 이후에는 농업에 관련된 식물 생육 실험에도 중점을 두었다. 그후 오늘날에는 열대식물학을 연구하는 식물원으로서, 그리고 시민의 휴식장소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면적이 약 30ha(약 10만평) 규모의 식물원에는 전세계의 각종 식물(특히 열대지역 수목과 꽃)이 식재되어 있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열대 식물학을 연구하기 위한 큰 규모의 도서관과 식물 표본실(Herbarium)도 구비하고 있다.
스웨덴이 낳은 동식물학자 린네(Carl Von Linne)가 1735년에 처음 발간한 ‘자연의 체계(Systema Naturae)’를 필자가 처음 만난 것도 이 도서관에서였다. 이미 이 식물원의 설립목적을 언급하였듯이, 이 식물원은 설립이후, 종자의 채취, 생육실험, 우량 종자의 배급 등을 통하여 싱가폴과 주변 지역의 농업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 가운데에는 고무나무도 있다. 원래 고무나무는 남미의 브라질이 원산지이다.
그러나 1877년, 이곳에 옮겨심어 장기간 실험한 결과 이 지역 토양과 기후조건 아래서의 성장성이 원산지보다 더 우수한 것을 알게되었다. 싱가폴은 크기가 작은 섬이므로 영국인들은 즉시 이를 싱가폴과 가까운 말레이반도에 이식하였다. 그들의 예상을 넘어, 이 고무나무(Euphorbiaceae Hevea brasilensis)가 말레이 반도에서 놀라운 성장결과를 보여주자 고무나무는 말레이반도 북부(오늘날 태국)와 캄보디아, 베트남 그리고 수마트라, 실론(오늘날 스리랑카)으로 식재면적이 급속하게 확대되어 오늘날 동남아시아는 세계에서 고무를 가장 많이 생산하는 지역이 되었다.
싱가폴 식물원에는 싱가폴 나라꽃인 난초(蘭草)의 보존과 품종개량을 위해 1923년부터 식물원의 한부분(약 1만평)에 별도로 난초 정원을 만들어 난초에 대한 심도있는 연구를 하고 있다. 현재 이 정원에는 약 1,000종 야생종과 개량잡종(Hybrid) 2,000종의 난초가 제각기 아름다움을 뽐내며 자라고 있다.
싱가폴 식물원안에는 3개의 큰 호수(평균 크기 5천평 규모)도 있어 방문객에게 평안한 휴식처도 제공해준다. 식물원은 남북으로 긴 모양을 하고 있는데 출입구가 4곳이 있다. 이 가운데 가장 남쪽인 탕그린(Tanglin)정문으로 들어가면 막바로 도서관과 식물표본실을 볼 수 있고 순서대로 식물원을 볼 수 있다. 넓은 식물원 공간에서는 특히, 동남아시아 지역의 정글 속에서 볼 수있는 수많은 종류의 수목을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다. 키가 큰 터미날리아(Terminalia)는 많은 사람들이 다니는 산책길가에 한껏 폼을 잡고서 있고, 콩과의 알비지아는 홀로 떨어진 곳에 훌쩍 서있다. 다른 나무와 별도로 서있는 높은 키를 가진 나무에는 식물원에서 나무가 벼락에 맞을까 염려하여 피뢰침을 나무 수간(樹幹)에 붙여놓았다.
수고(樹高)가 30m에 이르는 알비지아(Leguminosae Albizia lebbekioides)에도 수간에 피뢰침을 설치해 놓아 그 전선줄이 나무끝까지 오르고 있다. 한 그루의 나무라도 세심하게 보존하려는 식물원측의 관리방법에 감동을 받았다. 오늘날 이 식물원은 싱가폴 국립공원관리소가 관리하고 있다.
한편, 싱가폴에 식물원을 처음 만든 레플즈는 영국에 귀국한 뒤 말년에 어려움을 많이 겪다가 세상을 떠났다. 그 어려움은, 싱가폴의 전략적인 중요성을 알지 못하던 영국 본사의 상관들이, 싱가폴을 영국영토로 만든 레플즈를 어리석고, 자기마음대로 상사의 지시를 무시한 독선적인 직원이라고 판단하여 레플즈에게 불명예를 준 것이다.
권주혁 이건산업 고문·강원대 산림환경과학대학 초빙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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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주혁. 서울대 농대 임산가공학과를 졸업했다. 1978년 이건산업에 입사해 이건산업(솔로몬사업부문) 사장을 역임했다. 파푸아뉴기니 열대 산림대학을 수료했으며, 대규모 조림에 대한 공로로 솔로몬군도 십자훈장을 수훈했다. 저서로는 <권주혁의 실용 수입목재 가이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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