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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율 1110원대도 위협…G2 통화전쟁 격화

원달러 환율이 1110원선 마저 위협받고 있다.

글로벌 달러화 약세기조, 미국 경기지표 부진, 미·일 추가 양적완화 등을 감안하면 원달러 환율이 연내 1000원대까지 내려앉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형국으로 치닫고 있다.

무엇보다 세계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는 두 강국(G2, 미·중) 간 통화전쟁이 갈수록 격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수출 증대를 위한 G2의 자국 통화 절하 시도는 일본, 태국, 브라질 등 신흥국으로 번져나가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 한껏 외쳤던 '공조'는 이미 사라졌다.

이 같은 외부 불똥으로 인한 원화 강세 지속은 우리나라 수출기업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 밖에 없다. 외환당국은 "원화절상 속도가 가파르게 진행될 경우 조정에 나서겠다"는 입장이지만, G20 의장국의 신분으로서 선뜻 개입 카드를 꺼내들 수 없는 상황이다.

◇가파른 원화 절상 속도

최근 증시에서는 환율 추가하락에 대한 기대가 형성되면서 환차익을 노린 외국인 매수세가 거셌다. 코스피지수는 6일 약 2년 10개월만에 1900선을 등반해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의 증시 호황기를 재현했다.

일본과 미국이 사실상 제로(0)수준의 기준금리를 단행하고 경기부양을 위해 돈을 대거 풀자 외국인들은 신흥시장, 특히 펀더멘털이 튼튼한 우리나라로 몰리기 시작했다. 이같은 외국인 자금이 주가를 끌어올리는 동시에 환율은 내리고 있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 8월말 1200원에 바짝 다가섰으나 불과 한달여 만에 1110원선 지키기도 힘겹게 됐다. 최근 3일동안 환율(종가 기준)은 5일 1130.7원, 6일 1118원, 7일 1114.5원을 기록해 말 그대로 '급락'했다.

전문가들은 급격한 환율 하락(원화 절상)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대외적으로 하락을 이끄는 요인이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일단 미국-중국 간 갈등이 적어도 미 중간선거가 있는 11월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중국 압박용으로 환율조작 보복 법안을 통과시킨 미국은 위안화 절상 요구 수위를 낮추지 않고 있다. 티머시 가이트너 미 재무장관은 외부 연설을 통해 위안화 가치를 올려야 한다고 재차 주문하고 있다.

이에 발끈한 중국은 미국산 제품에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는 등 보복 조치를 취했다. 특히 미국의 이같은 전방위 협박(?)이 통화 주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보고 불쾌한 심기를 감추지 않고 있다.

원자바오 중국 총리는 "위안화가 (미국) 요구대로 20~40%가량 절상되면 중국의 많은 공장들이 문을 닫고 사회가 혼란에 빠질 것"이라며 사실상 과감한 수준의 절상은 없음을 시사했다.

미국 정부가 추가 양적완화에 나설 것이라는 기대감도 달러 약세 및 아시아 통화 강세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이미 국채 매입프로그램 강화 정책을 내놓는 등 선진국마다 경기부양을 위한 돈 풀기에 적극 나서고 있다.

외환시장 관계자는 "대외적으로 원달러 환율 하락 요인이 많아 연말까지 추가 하락 시도가 이어질 것"이라며 "심리적 지지선인 1110원마저 뚫리면 연저점(1104원) 돌파도 가능할 수 있다"고 말했다.

◇수출기업 채산성 악화 우려

환율 하락의 가장 큰 피해자는 수출 기업이다. 원화가 오르면서 '수출기업 제품의 가격 경쟁력 하락→기업 수익성 및 채산성 하락→성장동력 약화'라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원달러 환율이 1%하락할 때 우리나라의 수출증가율은 0.05%포인트, 경제성장률은 0.07%포인트 떨어질 것으로 추산했다. 또 다른 국가들의 환율 갈등으로 세계 교역이 1%포인트 줄면 한국의 수출 및 경제성장률은 각각 0.91%포인트, 0.34%포인트 하락한다고 분석했다.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더라도 주변국의 갈등을 '불 건너 구경하듯' 지켜볼 수만 없다는 뜻이다.

정영식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당분간은 환율갈등에 따른 통상 마찰이 빈번하게 발생할 것"이라며 "교역환경이 악화됨에 따라 한국 수출 타격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수출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로서는 원화 강세의 부정적인 효과가 다른 나라에 비해 크게 나타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해외자금의 유입, 유출에 따라 국내 자본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될 수 있다는 점도 우려스럽다. 정 연구원은 "환율갈등 여파로 원화 강세가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되면서 환차익을 노린 해외 투자자금 유입이 확대될 것"이라며 "이 경우 금융시장의 변동성도 확대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일단 외국인 자금이 대거 들어오더라도 차익 실현을 위해 향후 투자금을 회수하기 시작하면 우리나라 외환시장과 주식시장의 불안감이 조성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외환당국 나설까

환율 등락은 이른바 '양 날의 칼'로 시장참여자 모두를 만족시킬 적정 수준을 찾기란 쉽지 않다. 이런 점에서 환율을 대하는 외환당국의 고민도 깊어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G20정상회의 의장국이라는 위치를 감안하면 섣불리 외환시장에 개입하기 힘든 면도 있다.

때문에 당국이 직접 나서기 보다 꾸준한 스무딩 오퍼레이션(미세조정)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조정해 나갈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변지영 우리선물 연구원은 "일본당국이 강도 높은 외한시장 개입을 단행한 데 이어 제로금리와 양적완화 정책을 취했지만 엔화절상을 방어하기엔 역부족이었다"며 "한국 외환당국 역시 개입에 대한 효과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선제적으로 나서기에 부담이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진=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