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글라데시 다카의 국립식물원 본관 앞 정원. |
권주혁 이건산업 고문·강원대 산림환경과학대학 초빙교수 |
동부 인도양의 벵갈만(Bay of Bengal)에 면해 있는 방글라데시는 벵갈만에서 매년 여러차례 발생하는 사이클론(태풍)의 영향으로 매년 큰 피해를 입으므로 세계의 주요 뉴스에 자주 등장하고 있다. 1991년에는 사이클론이 불어서 14만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사태가 일어나기도 하였다. 국토의 면적은 남한의 1.5배이나 인구는 3배가 넘는 1억 5천만명 이상이다. 인디아, 미얀마와 국경을 맞대고 있으나 인디아와 맞대고 있는 서남부의 긴 국경지대는 넓은 강들이 있는 델타 평야 지대로서 사이클론이 몰아칠 때는 이 지역의 거의가 물속에 잠기는 일이 매년 되풀이 되고 있다.
한편, 이 지역은 세계에서 가장 큰 홍수림(紅樹林; mangrove) 지대로서 6,000㎢에 달하는 해안지대(강물과 바닷물이 만나는)에서는 각종 어류(魚類)와 갑각류가 보금자리를 트고서 생육, 성장하는 지역이다. 1947년 인디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할 때 종교적인 이유로 파키스탄과 실론(스리랑카)은 각각 분리된 독립국가가 되었다. 당시 방글라데시는 동(東)파키스탄에 속하였으나 파키스탄 중앙 정부의 서(西)파키스탄 위주 편견정책에 불만을 품은 동 파키스탄이 내전을 벌인 끝에 독립하게 되었다.
이렇게 독립 한 것이 방글라데시이다. 독립운동은 1969년부터 본격적으로 무장 봉기를 시작하여 1971년에는 인디아 군의 도움을 받아 파키스탄군과 대규모 전투를 벌인 끝에 파키스탄군이 인디아군에 항복 함으로써 마무리되었다.
수도인 다카(Dhaka 또는 Dacca)는 인구 1,500만명의 대도시이나 지하철도 없고 도로폭도 좁아서 교통 체증이 극히 심하다. 다카의 서북쪽 외곽에 있는 밀풀(Mirpur) 지역에는 방글라데시가 자랑하는 국립 식물원이 있다. 파키스탄 통치시대인 1962년에 개원된 이 식물원은 면적 84ha(약 28만평)로서 식물원 안에는 258종의 수목과 240종의 화초 이외에 수많은 선인장과 난초 등이 자라고 있다. 식물원 정문을 들어가면 식물원 안에 있는 본관 건물까지 약 1km 의 도로 양옆에 날렵한 모습으로 키가 똑바로 자란 폴리알티아(Annonaceae Polyalthia longifolia)와 대낮의 약한 바람에도 가지를 흩날리고 있는 카수아리나(Casuarinaceae Casuarina littoria)가 방문객을 맞아준다.
폴리알티아가 얌전하게 한복을 차려입은 여성이라면 카수아리나는 멋도 안내고 덥수룩한 머리에 청바지를 입고 있는 남자대학생 같은 느낌이다. 언젠가 인도네시아의 자바섬 서쪽에서 연락선을 타고서 순다(Sunda)해협을 건너서 수마트라 남단의 작은 항구도시인 바카우(Bakau)에 도착하였을 때, 부두를 벗어나자 도로 양옆에 도열한 채로 가랑비 속에서 여행자를 맞아준 바로 그 폴리알티아를 여기서 다시 보게 될 줄이야….
방글라데시에서는 이 나무를 데브다루(Debdaru)라고 부른다. 수목으로 뒤덮힌 오솔길을 천천히 걸어서 한참가자, 넓은 정원이 펼쳐지고, 영국의 시골에서 볼 수 있는 붉은 벽돌 2층 집이 나타난다. 이 건물은 식물원의 사무실과 연구실로 사용되는 곳이다. 건물 옆에는 호주에서 홉파인(Hoop Pine)이라고 부르는 (외부 모습이 소나무처럼 보이지만 소나무가 아니다) 아라우카리아(Araucariaceae Araucaria cunninghamii)가 우뚝 솟아 있다.
독립하고 나서 2년 뒤인 1973년에 인디아에서 도입하여 심었다고 하는 이 나무는 흉고직경이 50cm에 달하였다. 미리 연락을 받은 하구(Shamsul Haque) 식물원장은 필자를 기다리고 있다가 자기 방으로 안내하고 식물원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을 해 주었다. 그리고 그는 필자를 안내하여 식물원 곳곳을 보여주었다.
본관 건물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상당히 규모가 큰 온실 안에는 세계 곳곳에서 수집해 온 선인장들이 있는데, 이날 필자는 선인장의 종류가 이렇게 많은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외국인은 거의 방문하지 않는지, 필자가 식물원장과 함께 선인장을 돌아볼 때 온실 밖에서 일하는 현장직원들이 눈을 돌려서 필자를 자주 쳐다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인건비가 싸서 그런지 식물원에는 112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다. 식물원장을 따라서 수목이 많은 곳으로 들어가자 동남아시아를 대표하는 이우시과(二羽枾科)의 수목들, 멀리 카리비안해에서 온 카리비안 소나무, 그리고 고무나무 등이 울창하게 자라서 주위를 가리고 있다. 이 나무들이 생육하고 있는 바로 옆에는 커다란 호수도 있어서 주위 풍광을 한층 멋있게 해준다.
방글라데시의 동남쪽은 다른 지역보다 해발 높이가 높아서 울창한 정글지대가 펼쳐져 있다. 이 나라 제2의 도시인 치타콩(Chittagong)은 이 지역에 있는데 치타콩에서, 미얀마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가장 남단 지역까지 여행하면서 열대삼림이 잘 보존되어 있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치타콩에는 삼림연구소와 함께 또 다른 식물원도 있다.
여행을 하다보면 경제적으로 가난한 나라들에는 식물원이 거의 없거나 있어도 아주 이름뿐이지 옹색하다. 방글라데시는 국민소득이 낮은 가난한 나라이지만 세계 어디에 내 놓아도 손색이 없는 훌륭한 식물원을 갖고 있고, 국민들 또한 상당히 긍정적인 마음을 갖고 있는 것에(그러므로 치안이 좋은 것 같다) 필자는 깊은 인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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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주혁. 서울대 농대 임산가공학과를 졸업했다. 1978년 이건산업에 입사해 이건산업(솔로몬사업부문) 사장을 역임했다. 파푸아뉴기니 열대 산림대학을 수료했으며, 대규모 조림에 대한 공로로 솔로몬군도 십자훈장을 수훈했다. 저서로는 <권주혁의 실용 수입목재 가이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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