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추억의 장르가 되어버린 서부영화에서 없어서는 안될 장면이 있다. 바로 악당과 영웅과의 총격씬. 특히 영웅을 피해가는 총알은 술독에 박혀 시원한 물줄기를 뿜어내며 총격 장면의 묘미를 더한다.
소위 ‘술독’이라는 별칭으로 더 유명한 오크통은 주로 졸참나무나 떡갈나무로 만드는데 중세 유럽국가들이 바다를 넘어 해외로 진출할 당시 식수나 식료품을 보관하는 용도로 애용되기 시작했다. 현대에 들어서도 오크통은 ‘숙성’이라는 감춰진 비법을 통해 깊은 맛을 물론 제품의 가치와 의미를 더해줘 식품업계에서 꼭 필요로 하는 필수 아이템으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와인 숙성을 오크통에 한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만 대부분의 위스키 또한 오크통 숙성이 정석이다. 위스키를 통해 약 6조원 가량의 경제적 효과를 창출해 내고 있는 스코틀랜드에서는 위스키가 숙성되면서 증발하는 2% 가량의 알코올에 대해 ‘천사의 몫(Angel’s share)’이라며 매우 아까워하기도 한다.
위스키 ‘킹덤’ – 쉐리와인 담았던 쉐리오크통에서 숙성해 과일향 나…성수기 겨냥 시향이벤트 진행
하이트-진로 계열의 위스키 ‘킹덤’은 140년 전통의 스코틀랜드 위스키 명가인 에드링턴 그룹의 오크통을 사용해 위스키를 숙성하고 있다. 완성된 오크통은 숯에 그을려 사용하는데 이 과정에서 원목 조직에 있는 작은 구조를 열어줘 위스키의 숙성이 활발하게 이뤄진다. 특히 ‘킹덤’은 일반 오크통이 아닌 쉐리와인을 담았던 '쉐리오크통'을 사용해 와인의 달콤한 과일 향과 오크통 특유의 고급스러운 맛을 더해 다채롭고 독특한 향을 내준다.
킹덤 측은 ‘쉐리오크통 숙성 위스키’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하여 지난 7월부터 강남권 유흥업소를중심으로 진행했던 시향(試香) 이벤트를 대대적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킹덤 마케팅 관계자는 “휴가철에만 한시적으로 진행하려 했으나 대상을 전국으로 넓혀 위스키 성수기인 연말연시까지 지속적으로 진행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킹덤 ‘시향, 시음 행사’ 오는 11월부터 경상권을 시작으로 경기도와 전라도, 충청도 순으로 실시된다.
국내 소주 시장에서도 오크통 숙성 바람이 한 차례 불었다. 진로가 96년 출시한 ‘참나무통 맑은소주’는 증류식 소주원액을 참나무통에서 1년 이상 숙성시킨 프리미엄 제품으로 1년만에 1억3천만 병이나 팔려나갔다. 그러자 너도나도 오크통 숙성 소주를 출시해 ‘미투(me too)제품’이 넘쳐났다.
올해 들어서도 진로에서 10년간 오크통에서 숙성시킨 증류식 소주와 ‘6년근 홍삼엑기스’를 블렌딩한 'JINRO 2010'을 출시한바 있으며, 순쌀로 빚은 증류원액을 오크통에서 숙성시킨 ‘일품진로’가 나오는 등 오크통 숙성 소주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대상 청정원 ‘5년 숙성 간장’ - 암반수와 벌꿀로 맛을 내고 오크통에서 5년간 숙성시킨 명품 간장
오크통 숙성은 비단 술 뿐만이 아니다. 대상 청정원은 국내 최초로 오크통에 5년간 숙성시킨 간장을 선보였다. 청정원 ‘5년 숙성 간장’은 국내산 검은콩을 원료로 순창의 지하 암반수와 벌꿀로 맛을 내고 오크통에서 5년간 숙성시킨 명품 간장이다.
이 제품은 오크통 숙성 과정을 통해 항아리에서 숙성된 간장보다 더욱 깊고 부드러운 맛과 향을 내주는 게 특징이다. 1세트(550ml, 2병) 가격이 10만원으로 ‘와인보다 비싼 간장’임에도 불구하고 매번 명절에 조기 품절 사태를 빚기도 했다.
청정원 관계자는 “제품 특성상 수량이 한정되어 있는 만큼 명절 선물용으로만 판매를 하고 있으며, 첫 선을 보인 지난해부터 전량 판매되고 있다”고 전했다.
세계인들이 즐겨 먹는 ‘타바스코 소스’ – 타바스코 고추에 식초와 소금 넣어 3년간 오크통 숙성
우리나라의 간장에 견줄만한 서양의 ‘핫소스’ 역시 오크통 숙성 과정을 거친다. 핫소스 중 가장 대표적인 ‘타바스코 소스’ 는 매운 맛이 강한 타바스코 고추를 으깬 뒤 식초와 소금을 넣어 오크통에서 발효시켜 만든다.
미국인 매킬레니가 1868년 상품화한 타바스코 소스는 멕시코에서 타바스코 고추씨를 얻어다 심은 후 잘 익은 열매를 오크통에 보관했는데 타바스코가 발효하면서 향을 내자 여기에 소금과 식초를 넣고 3년 이상 발효시켜 소스를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별도의 색소나 방부제가 전혀 들어가지 않는데도 오크통 숙성을 통해 톡 쏘는 향과 매운 맛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맛깔스런 소스가 탄생되는 것이다.
한편 타바스코 소스를 수입하고 있는 오뚜기는 UCC를 통해 타바스코 소스 칵테일 등 새로운 레시피를 전파한 결과, 젊은 층을 중심으로 소비가 늘어나며 현재까지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20% 가량 증가했다고 밝혔다.
최고급 포도주 식초인 ‘발사믹 식초’ – 4년부터 25년 산까지…오크통에 여러 번 옮겨담아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갔을 때 기본으로 주는 빵에 찍어먹도록 올리브유와 섞여 나온 짙은 갈색의 소스인 발사믹 식초. 발사믹 식초는 이탈리아의 전통 양념으로 우리나라의 간장과 같은 장류다.
발사믹 식초는 단맛이 강한 포도즙을 오크통에 여러 번 옮겨 담아 최소 4년부터 12, 18, 25년까지 숙성을 시키는데 위스키나 와인과 마찬가지로 숙성기간이 길수록 맛과 향기가 뛰어난 것이 특징이다. 발사믹 식초는 오랜 기간 숙성한 만큼 신맛이 옅어지고 오히려 단맛이 증가한다. 또한 뛰어난 향이 뛰어나 샐러드 드레싱이나 구이, 조림용 소스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하이스코트 장병선 상무는 “식품 업계에도 건강을 위한 슬로푸드 열풍이 불면서 오래 묵히고 숙성시킨 제품들이 속속 출시되고 있다”고 분석하고 “오크통을 활용해 오랜 숙성과정을 거치는 점을 강조하는 이른바 에이징 마케팅(Aging-marketing)이 고객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