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투자은행(IB) 육성법안 국회 통과 어려울 듯

[재경일보 양진석 기자] 최근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미국식 금융모델인 대형 투자은행(IB) 도입 등을 골자로 한 자본시장법 개정안의 오는 가을 정기국회 통과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정치권, 증권노조 및 시민단체 등에서 미국의 대형 IB인 리먼브라더스 파산으로 지난 2008년 금융위기가 발생한 것처럼 한국에서도 동일한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며 도입을 반대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22일 금융위원회와 국회 등에 따르면 지난달 27일 입법예고된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 개정안은 오는 10월 국회에 제출될 예정이다.

이 개정안에는 대형 종합금융투자사업자(투자은행)와 대체거래소(ATS) 도입 등이 담겨 있다.

개정안이 통과되어 대형 투자은행(IB)이 만들어지면 이곳을 통해 기업 인수합병(M&A) 자금 대출과 비상장주식 직거래, 헤지펀드에 대출하는 프라임브로커 업무 등이 가능해진다.

국내에도 미국의 골드만삭스와 같은 대형 투자은행이 설립될 수 있는 법적 기반이 마련되는 셈이다.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지난 1월 김석동 금융위원회 위원장 취임 이후 강력히 추진되어 왔다.

현재 대형 IB로 지정될 수 있는 증권사로는 3조원 이상의 자기자본 규정을 갖출 수 있는 대우, 삼성, 현대, 우리, 한국증권 등이 있다.

그러나 글로벌 경제위기로 최근 금융시장이 급격히 불안정해지면서 새 제도의 실효성과 부작용 등을 대대적으로 점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나라당 허태열 정무위원장실 관계자는 "정무위원들은 대형 투자은행을 만들거나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금융기관이 내실있게 성장하고 안정화된 금융시스템으로 정착할지에 관심을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형 IB와 헤지펀드 같은 미국형 금융모델에 반대하는 의원들도 많다.

민주당 박선숙 의원실 관계자는 "개정안에 기본적으로 반대한다. 헤지펀드나 대형 IB는 미국 모델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 모델의 실패가 어느 정도 확인됐다. 개선안과 관련해 따져볼 부분이 많다"고 밝혔다.

증권노조와 시민단체도 대형 IB 도입을 반대하고 있다. 지난 18일 전국증권산업노동조합 등 9개 시민사회단체는 금융투자협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법 개정안 내용이 기업에 안정적, 장기적으로 자금을 공급하는 자본시장의 본원적 역할과 배치된다며 입법예고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특히 헤지펀드 도입을 반대했다. 이규호 증권노조 위원장은 "단기차익을 노리고 들어온 외국 헤지펀드가 국내 시장을 더욱 불안정하게 만들었다. 토종 헤지펀드가 출범하더라도 외국계와 비슷한 방법으로 불안정을 키울 수 있다"고 주장했다.

자본시장법 개정은 필요하지만 대형 IB 도입 등에 대해서는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민주당 이성남 의원실 관계자는 "자본시장법 개정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자본시장법 도입 이후 제도상 한계로 작동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한나라당 권택기 의원실 관계자는 "현재 위기 상황도 중요하지만, 앞으로 먹을거리를 금융권에 만들어주는 것도 생각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 금융시장은 약점이 많으니, 외국 사례를 무작정 따라갈 수 없다. 현 상황을 고려해 기술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금융시장을 선진화하려면 개정안 통과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는 금융당국은 개정안을 예정대로 제출할 계획이다.

금융위원회 진웅섭 자본시장국장은 "자본시장법안은 미래 그림을 그린 것이므로 현재 금융시장 상황 때문에 달라질 것이 없고, 헤지펀드 역시 금융산업 선진화 차원에서 포기할 수 없다"며 "시장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것과 금융시장을 발전시키는 것은 구분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