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김상고 기자] 24일(현지시간) 잡스의 갑작스런 사임이 발표된 뒤, 이 소식이 국내 안드로이드 제조사들에게, 특히 한국의 기업들에게 이득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외신 보도가 쏟아지고 있다.
애플의 아이폰·아이패드와 경쟁관계에 있을 수 밖에 없는, 그리고 치열한 특허전쟁을 벌이고 있는 삼성을 중심으로 한 한국 IT 기업들에게 잡스의 사임은 충격적인 소식인 동시에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는 호재(건강으로 물러나는 것이어서 큰 소리내서 웃을 수는 없지만)라고 할 수 밖에 없다.
로이터는 이번 잡스의 사임에 대해 증권업계 관계자를 인용 “삼성은 네덜란드 법원에서 부분적인 승리를 거두며 이미 점수를 올렸고 스티브 잡스의 사퇴로 또다시 이득을 얻었다”며 “스티브 잡스 사퇴 이후 애플은 방향을 잃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블룸버그도 “잡스의 창의력과 아이디어는 애플의 주요 동력이었다”며 “그의 장기적인 부재가 계속될 경우 한국 기업들은 기회를 잡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국내 IT 업계 역시 구글의 모토로라 인수로 인한 특허전력 강화, 네덜란드 법원의 삼성 일부 승소 판결 등 최근 일련의 중대한 변화와 함께 스티브 잡스의 은퇴는 안드로이드 진영에 힘을 크게 실어주게 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먼저 애플의 창의력과 아이디어의 원동력인 스티브 잡스가 물러난 것은 삼성 등 한국 IT 기업들에게 있어서 애플과 세계 시장을 놓고 경쟁하는데 있어서 다행스러운 일이다. 물론 잡스가 은퇴 뒤에도 뒤에서 많은 영향을 미치겠지만, 세계적인 IT 기업으로서는 어울리지 않게 콘텐츠보다는(물론 콘텐츠도 우수했지만) 잡스라는 인물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던 애플에게 있어서 그의 퇴임은 결코 좋은 소식이 될 수 없다.
또한 잡스의 퇴임은 세계적으로 애플이 벌이고 있는 특허 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애플은 현재 삼성을 상대로 주장해왔던 제품 디자인 관련 지적재산권이 네덜란드 법원에서 사실상 모두 인정되지 않아 향후 소송전에서 큰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또 애플이 최근 노텔의 인수로 기능과 기술 특허를 상당수 확보했지만, 구글 역시 모토로라 모빌리티의 인수로 기술 특허를 강화해 특허 전쟁에서 섣불리 승리를 장담하기 힘들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해석이다. 특허 소송의 전략을 바꾸거나, 잠시 제동을 걸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여기에다 사실상 특허 소송을 주도해온 스티브 잡스의 퇴임과 새 CEO로 임명된 팀 쿡의 경영 스타일은 향후 삼성과의 소송전에 적지 않은 영향이 미칠 것이라고 분석되고 있다. 스티브 잡스는 아이폰4를 공개하는 자리에서 삼성을 ’카피캣’이라고 비난하는가 하면 아이클라우드를 소개하면서는 구글과 아마존의 클라우드를 깎아내리는 등 평소 직설적이고 도발적인 언행을 서슴치 않아 많은 논란을 일으켜왔다. 최근 애플이 삼성 등 안드로이드 진영을 상대로 끈질긴 특허 소송전을 진행하고 있는 것도 이 같은 잡스의 성향이 반영됐다는 것이 업계와 외신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하지만 새로운 CEO로 임명된 팀 쿡은 스티브 잡스와 달리 꼼꼼하고 이성적인 성향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로 인해 애플의 특허 소송에 어느 정도 변화가 생길 수도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물론 팀 쿡이 소송을 그만두리라고 단언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전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아직까지는 그 어떤 변화도 예측하기 힘들다”면서도 “다만 전쟁 중에 영향력 있는 수장이 바뀌었다는 사실은 분명 상대방에 유리한 신호”라고 말했다.
향후 애플의 지도체제 변화에 대한 반사이익이 삼성에게 돌아갈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정확한 답을 현재 누구도 제시할 수 없으나, 하드웨어의 시대에서 소프트웨어로의 시대전환을 늦게나마 읽고 빠른 재추격에 나설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