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양진석 기자] 증시 강세장에서 주도주에 올인 투자해 고수익을 올린 자문형랩이 갑작스런 주식 폭락으로 인해 잔고가 한 달 사이에 무려 17%나 축소했고, 손실률은 코스피 하락률을 웃돈 것으로 나타났다. 폭락장 속에 약해 피해가 클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로 나타난 셈이다.
작년 3월 말 5천300억원에 불과했던 주요 증권사의 주식형 자문형랩은 작년 말 5조6천774억원으로 10배 이상 급증했다. 이로 인해 `자금 블랙홀'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이후에도 계속 늘어나 올해 7월 중순에는 9조1천447억원에 이르렀다.
하지만 주식폭락장 속에서 또 다른 의미에서 말 그대로 자금 블랙홀이 된 셈이다.
2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14개 국내 주요 증권사의 자문형랩 잔고는 지난 12일 현재 7조5천982억원으로 파악됐다.
지난달 15일 9조1천447억원에 비하면 한 달 만에 자산 규모가 17% 증발한 것이다. 자문형랩 잔고는 평가액을 기준으로 매긴다.
자문형랩은 무서운 기세로 자금을 빨아들였지만 지난 달 초 미국 신용등급이 하향조정된 이후 상승세에 급제동이 걸렸다.
이 기간에 코스피는 2,145.20에서 1,793.31로 16.40% 떨어졌다. 17%인 자문형랩 잔고보다는 하락폭이 적었다. 자문형랩이 더 피해를 본 셈이다.
증권사별로 보면 자문형랩 1위인 삼성증권의 잔고는 2조8천745억원으로 7월 말보다 17% 감소했다.
2위 미래에셋증권은 1조296억원, 3위 한국투자증권은 9천318억원, 4위 우리투자증권은 8천863억원으로 각각 줄었다.
각각 7월 말에 비하면 미래에셋증권 잔고는 17%, 한국투자증권 23%, 우리투자증권 22% 각각 줄어든 것이다.
자문형랩 평가액의 하락률은 코스피보다 컸던 이유는 소수종목에 압축투자하기 때문에 급락장에 약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자문형랩은 10~15개 종목에 집중적으로 투자해 시장 대비 초과수익률을 극대화하는 구조로 설계된 탓에 증시 조정기에는 종목별 편입 비중에 따라 높은 변동성을 나타낼 수 있다.
한 증권사가 판매한 주요 자문형랩의 16~19일 평균수익률은 -3.09%로 같은 기간 코스피 하락률 -2.70%에 비해 훨씬 심각했다.
자문형랩 시장 1위 브레인투자자문의 한 상품은 1주일새 -5.44%의 손실을 기록했다. GSㆍ오크우드ㆍ유리치투자자문이 운용하는 랩의 1주일 수익률도 -5%를 밑돌았다.
자문형랩 상품은 1개월은 물론 3개월 수익률도 모두 원금 손실 수준이다.
주요 자문형랩 평균 수익률은 1개월 -18.55%, 3개월 -24.40%, 6개월 -21.18%로 코스피 하락률보다 손실이 컸다. 코스피 하락률은 1개월 -18.09%, 3개월 -16.73%, 6개월 -13.33% 등이다.
그러나 이런 가운데도 자문형랩의 대규모 환매사태는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자문형랩 잔고 1위인 삼성증권 관계자는 "주가가 많이 내려 잔고가 줄었지만, 환매하는 고객은 거의 없다. 오히려 이달에도 1천억원이 순유입되는 등 새로 투자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말했다.
주가가 다시 올라가 잃어버린 수익을 다시 거둘 수 있다는 기대감이 반영된 탓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