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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억이상 해외계좌 5,231개·금액11조 파악

[재경일보 이호영 기자] 국세청이 지난 6월 10억원 이상 해외금융계좌에 대해 첫 자진신고를 받은 결과, 개인 211명, 법인 314개사가 5천231개 계좌에 총 11조4천819억원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개인 평균 계좌보유액은 46억원, 법인은 335억원이었으며 가장 돈을 많이 예금한 개인은 601억원, 법인은 1조7천362억원이었다.

이들 중에는 해외에서 활약 중인 스포츠스타, 연예인, 재벌 총수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거주지별로는 기업 오너와 인기 연예인이 많이 살고 있는 서울 용산구 거주자들이 해외계좌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었다.

또 개인이 해외계좌를 두고 있는 곳은 대부분 미국이었고, 금액도 대부분 미국에 집중되어 있었다.

반면 법인이 해외계좌를 많이 두고 있는 곳은 아랍에미레이트였고, 금액은 말레이시아였다.

31일 국세청이 발표한 '해외금융계좌 신고결과'에 따르면, 작년 해외계좌 잔액이 하루라도 10억원 이상이었다고 신고한 건수는 525건, 총 신고계좌는 5천231개였다.

개인의 경우, 211명이 768개의 계좌를 신고했으며 신고금액은 모두 9천756억원이었다. 개인이 보유한 최고금액은 601억원이었다. 또 개인 평균 신고계좌는 3.6개며, 최대 35개의 계좌를 보유한 사람도 있었다.

거주지별로 살펴보면, 재벌 총수와 연예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한남동과 이촌동을 관할하고 있는 서울의 용산세무서에서 23건, 금액으로는 1773억원이 신고돼 전국에서 해외계좌 신고건수와 신고금액이 가장 많았다.

이어 압구정동·청담동·논현동 등을 관할하는 강남세무서에 21건이 신고됐고, 삼성·대치·개포동을 관할하는 삼성세무서에 19건이 신고됐다.

법인은 314개 법인이 4천463개 계좌, 10조5천63억원을 신고했다. 법인 평균 신고계좌는 14.2개이고 최다 계좌 보유법인은 389개였다.

국가별로 보면, 개인은 계좌와 금액 모두 미국이 408개와 4천973억원으로 가장 많았다. 또 계좌수는 미국(408), 캐나다(68), 일본(63), 홍콩(59), 싱가포르(48) 순이었고, 금액으로는 미국(4,973억원), 싱가포르(1,509억원), 일본(795억원), 홍콩(653억원), 캐나다(402억원) 순이었다.
 
국세청은 "미국과 캐나다, 일본에는 유학생들이 많아 해외계좌 수가 많은 것으로 보이며, 홍콩과 싱가포르는 이자소득세가 없거나 낮아서 부자들이 금융계좌를 많이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법인은 상장기업 인수가 이뤄진 말레이시아(1조7천773억원)와 아랍에미리트(405개)가 각각 금액과 계좌수가 가장 많았다.

계좌수는 아랍에미레이트(405), 베트남(389), 중국(364), 미국(295), 일본(275) 순이었고, 금액은 말레이시아(17,773억원), 아랍에미레이트(14,448억원), 싱가포르(12,339억원), 미국(7,917억원), 영국(6,758억원) 순이었다.

중동의 아랍에미리트연합의 경우에는 중동 지역에 진출한 건설사들이 금융 중심지인 두바이 소재 은행에 계좌를 트고 거래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계좌수가 가장 많았고, 중소업체 진출이 활발한 베트남(389개)과 중국(364개)에도 법인들의 해외계좌가 많았다.

예금주 비밀보호를 잘 해주기로 유명한 스위스의 경우, 개인 2명이 2개의 계좌에 70억원이 있다고 신고했고, 법인은 5개 기업이 9개 계좌에 1천억원 가량을 예치하고 있다고 신고한 것으로 나타났다.

해외금융계좌 유형은 예·적금이 전체의 95.7%를 차지했으며 주식은 2.4%, 기타 1.9%였다.

국세청은 이번 세무조사 대상에 대기업은 포함돼 있지 않고 대부분 중소업체와 자영업자,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라고 밝혔다. 올 상반기에도 국세청은 권혁 시도상선 회장을 포함해 역외탈세 혐의자 87명을 세무조사해 6365억원을 추징했다.

하지만 이번 해외계좌 자진신고 기간에 국세청이 개인 2000명에게 안내문을 발송했고, 이 가운데 자진 신고한 개인은 211명에 불과했다. 이처럼 신고율은 10.1%에 그쳐 재산반출과정이 불투명한 납세자를 양성화하려는 당초 효과는 미미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800명의 개인은 신고를 하지 않은 것이다. 또 이 기간에 해외금융계좌를 신고한 납세자는 대부분 국세청이 파악하고 있는 사람들이며, 추가로 신고한 사람은 10명도 채 안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세청은 외국 과세당국으로부터 제공받은 조세정보자료를 분석, 이번에 신고하지 않은 납세자 가운데 기업자금과 국내 재산을 반출해 해외예금·주식 등에 옮겨놓고도 이자소득을 신고누락하고 해외금융계좌 신고를 하지 않은 법인사업자 24명과 개인 14명 등 탈루혐의자 38명을 색출해 1차로 지난 30일부터 강도 높은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법인사업자 24명의 경우 국내법인을 운영하면서 변칙 국제거래를 통해 해외비자금을 조성하거나 국내 탈루소득을 해외에 숨겼으며, 개인 14명은 자금원이 불투명한 자금을 외국으로 빼 해외 이자소득 등을 신고하지 않은 혐의를 받고 있다.

이에 국세청은 기획재정부와 협의해 100억원 이상의 거액 해외금융계좌를 보유하고도 신고하지 않은 사람에 대해 3년 이하 징역이나 미신고금액의 20%를 벌금으로 물리는 형사 처벌을 하는 등 해외금융계좌 신고제를 보완하기로 했다. 현재는 탈루 등 혐의가 드러나면 법정 최고한도의 과태료(미신고액의 5%, 내년은 10%)를 부과할 수 있게 되어 있다.

또 앞으로 계속해서 기업탈세자금의 해외은닉을 통한 해외발생 소득 무신고업체에 대해서는 세무조사를 병행실시하고 해외자금원천이 불분명한 납세자는 자금출처 조사를 할 방침이다.

박윤준 국세청 국제조세관리관은 "성실신고를 유인하고 미신고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방안을 기획재정부와 협의하는 한편 엄정한 세무조사를 통해 '미신고 계좌는 언젠가 적발된다'는 인식을 꾸준히 확산시켜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