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양진석 기자] 코스피가 103포인트나 폭락하며 1,700선을 내주고 원ㆍ달러 환율은 장중에 달러당 1,200원 선을 위협하는 등 한국 금융시장이 사실상 제2의 금융위기에 빠졌다.
23일 코스피는 전날보다 103.11포인트(5.73%)나 대폭락한 1,697.44에 거래를 마쳤다. 이는 종가기준으로 지난해 7월7일(1,675.65) 이후 최저치다. 또 코스피가 1,700선 아래에서 장을 마친 것은 작년 7월8일 이후 1년2개월여 만에 처음이다. 지수는 이날 3.56% 내린 1,736.38에 출발했지만, 외국인의 매도 확대로 인해 낙폭이 커졌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추가적인 유동성 공급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실망감과 최근 IMF 등 국제기구들의 우울한 경제 전망이 잇따라 나온 상황에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까지 경기 하강을 언급하며 불안심리가 증폭돼 간밤에 미국과 유럽의 주가가 폭락한 것이 투자심리를 극도로 위축시켰다. 그리스와 이탈리아 등 유럽 각국의 재정위기 속에 대형 은행들의 '뱅크런(예금 대량이출)' 가능성도 공포심리를 부추기고 있다. 프랑스 최대 은행인 BNP 파리바는 신용등급 하향 조정 경고를 받고서 큰 손들이 자금을 찾는 뱅크런 상황을 맞기도 했다.
오후 들어서는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가 그리스 은행 8곳의 신용등급을 두 단계씩 강등했다는 새로운 악재로 인해 코스피가 결국 1,700선마저 내주었다.
기금이 1천262억원을 순매수해 지수 방어에 나섰지만, 보험(1천666억원), 증권(837억원), 투신(697억원)이 일제히 매도에 나서 방어에 역부족이었다.
장 초반 순매수했던 외국인은 '팔자'로 돌아서 6천789억원을 순매도해 주가 폭락을 부채질했고, 기관도 2천99억원의 매도 우위를 나타냈다. 개인은 8천990억원 어치를 순매수했다.
문제는 1,700선이 무너졌다는 것보다 바닥이 어딘지를 전문가들조차도 섣불리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에 국내 증시가 처해 있다는 것이다. 다음 지지선으로 주가순자산비율(PBR) 1배 수준인 1,650선이 거론되고 있기는 하지만, 유로존 위기가 시간이 갈수록 확산되고 있어 이마저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대외 악재가 몇 번만 더 발생하면 1500선까지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원ㆍ달러 환율도 계속해서 치솟아 1,000원대가 무너지는 것을 우려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1,200원대가 넘어가는 것을 우려하는 상황이 됐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ㆍ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달러당 13.8원 내린 1,166.0원에 마감했다. 하지만 이는 정부의 개입으로 인한 것으로, 시장에서는 환율상승의 압박이 계속됐다. 또 정부가 개입했다는 것 자체가 지금의 상황이 매우 심상치 않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과 같다.
이날 환율은 전날보다 15.2원 급등한 1,195.0원으로 출발했지만,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에 모처럼만에 하락세로 돌아섰다. 하지만 결국 상승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1,196.0원까지 치솟았다. 그러자 장 마감 직전에 정부 개입으로 추정되는 달러 매도 물량이 쏟아져나와 환율이 결국은 하락세로 돌아섰다. 하지만 정부가 개입하지 않았다면 1,200원대를 넘어서는 것이 시간 문제였다.
한 외환딜러도 "정부 개입에 급등세는 진정됐지만, 역외 달러 매수세가 강해 환율 상승을 진정시키기에는 역부족일 수 있다"며 "아직 시장은 환율 상승 쪽에 베팅하고 있다"고 말했다.
채권시장에는 안전자산 선호 심리로 자금이 몰렸다.
지표물인 국고채 3년물 금리는 전날보다 0.04%포인트 하락한 3.45%에, 5년물 금리는 전날보다 0.06%포인트 떨어진 3.56%에 각각 고시됐다. 10년물 금리는 전날보다 0.06%포인트 내린 3.76%, 20년물 금리는 0.04%포인트 떨어진 3.88%에 각각 마감했다.
양도성예금증서(CD) 91일물 금리는 전날과 같은 3.58%로 3년물과 5년물 금리보다 높았다. 기업어음(CP) 91일물 금리는 전날과 같은 3.68%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