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전재민 기자] 최근 영업정지된 저축은행들의 대규모 불법대출 정황이 과거에도 수차례 회계법인에 의해 포착됐던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법무법인들은 이것에 두고도 "불법으로 볼 수 없다"며 저축은행측을 안심시켰던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저축은행들은 한 달 만에 영업정지됐고, 결국 5천만원 초과 예금자와 후순위채권 투자자 1만4천명이 피해를 보게 됐기 때문에 논란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또한 회계법인에 의해 포착된 불법대출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금감원 등 금융당국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25일 금감원에 따르면, A회계법인은 지난해 3월과 올해 3월 경기도 일산 고양종합터미널의 시행사인 종합터미널고양㈜에 대한 2008∼2010 회계연도 감사보고서에서 제일ㆍ제일2ㆍ에이스저축은행의 우회대출을 지적했다.
보고서는 고양터미널의 공동사업자로 참여한 중소기업과 특수목적법인(SPC) 등에 이들 저축은행이 빌려준 돈과 관련해 "특수관계자 명의로 차입해 실질적으로는 회사(시행사)가 사용하고 있다"며 "차입금에 대한 이자도 차입금의 실질적 이용자인 회사가 전액 부담하고 있다"고 명시했다.
제일ㆍ제일2ㆍ에이스저축은행이 공동사업자로 꾸민 업체에 돈을 대줬지만, 실제로는 이들이 한도초과 대출을 금지한 법망을 피하려고 시행사가 내세운 차명차주에 불과하다는 점을 발견한 것이다.
시행사의 전ㆍ현직 임원 4명은 공동사업자로 참여한 기업과 SPC 6곳의 임원도 돌아가면서 맡았다. 이들 저축은행은 이 같은 방식으로 수십개 위장 공동사업자에 대해 약 10년동안 6천400억원을 불법대출했다.
보고서는 또 시행사가 2년 연속 자본잠식 상태에 빠져 있다는 점에 주목, "계속기업으로서의 존속능력에 중대한 의문을 제기한다"며 "(준공 후) 분양과 임대 사업에 차질이 발생하면 자산과 부채를 정상적으로 회수하거나 상환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나 금감원은 그동안 저축은행들에 대한 정기검사에서 이 같은 사실을 제대로 밝혀내지 못했다. 올해 7월 에이스저축은행만 한도초과 대출로 7억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은 게 전부다.
금감원 고위 관계자는 "과거 금감원의 저축은행 검사에 일부 문제점이 있었던 점을 인정한다"며 "이번 경영진단에서 불법대출을 철저히 따져 잡아냈으며, 앞으로도 검사 관행을 개선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불법대출을 한 저축은행 편에 선 법무법인들도 논란의 중심에 떠오르고 있다.
이들 저축은행의 경영평가위원회에 제출된 자료를 보면, B법무법인은 지난달 10일 금감원 출신 변호사가 작성한 제일저축은행에 대한 법률검토 의견서에서 고양터미널 대출을 두고 "대출한도를 위반한 것으로 볼 것은 아니라고 사료된다"고 밝혔다.
B법무법인은 "시행사와 공동사업자들이 사실상 동일차주라는 논란이 제기될 수는 있다"면서도 "사업이 중단돼 대출금 회수가 곤란해지고 민원으로 어려움을 겪느니 다수의 사업참여자(공동사업자)에 대출해 사업을 진행하는 게 합리적"이라는 주장을 폈다.
C법무법인도 지난달 8일 "고양터미널 사업의 대출을 받은 공동사업자들은 동일차주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의견서를 내놨다.
해당 법무법인들은 "어차피 대출금을 단기간에 회수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며 "아무래도 의뢰인에 유리한 쪽으로 답변하기 마련이다. 관점에 따라 해석이 다를 수 있는 것이며, 최종 판단은 의뢰인의 몫"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정부의 시각은 조금 다르다. 법률적 다툼이 예상되는 사안 앞에서 저축은행측에서는 법무법인의 의견에 전적으로 의존하기 쉽다는 것이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명백한 불법대출을 `아니다'고 왜곡한 건 다소 지나쳤다"며 "특히 금융회사의 부실은 자칫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법률자문도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