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양진석 기자]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가 7일(현지시간)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신용등급을 낮췄다. 무디스와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가 이탈리아 등급을 낮춘 데 따른 조치였다.
무디스는 이날 남유럽 국가는 아니지만 영국 은행 12곳과 포르투칼 은행 9곳의 신용등급도 강등했다.
무디스와 피치는 슬로베니아 국가 신용등급을 한 단계 낮췄고, S&P는 벨라루스 신용등급을 낮췄다.
일일이 언급하기 힘들 정도로 최근 몇 달 사이에 유럽 국가들과 은행들의 등급이 무더기로 강등됐다.
이어 무디스는 벨기에-프랑스 합자은행인 덱시아 은행이 과도한 그리스 국채 보유로 자금조달에 차질을 빚으며 파산 위기에 몰리자 이 은행에 대해 벨기에 정부가 지급보증을 서기로 긴급 결정한 것과 관련해 벨기에의 신용등급 가능성도 경고했다.
신용등급 강등 `도미노'는 유로존의 재정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앞으로도 계속 될 전망이다.
유럽중앙은행(ECB)이 지난 6일 유로존 위기가 해결되지 않고 점점 심각해질 조짐을 보이자 긴급히 시중은행에 유동성을 공급하겠다고 밝혔지만, 그리스 국가부도 위험이라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은 되지 못해 시장의 불안을 없애지 못했다.
증권 전문가들은 "그리스에 이어 이탈리아와 스페인 등 남유럽으로 재정위기가 확산되고 있다"며 "이는 국제 신용평가사들의 무더기 국가·은행 등급 강등을 통해 여실히 드러나고 있으며, 재정위기가 실물로 번질 가능성도 있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8일 분석했다.
이들은 "영국, 프랑스 등 주변국으로 위기가 전염되면 시장 충격은 걷잡을 수 없게 된다"며 "하지만 가능성은 적은 편이며, 국제 공조가 이뤄져 해결 국면이 시작될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IBK투자증권 나중혁 이코노미스트는 "이탈리아는 무디스가 이미 3단계나 등급을 낮춰 큰 충격이 없다. 문제는 스페인"이라며 "10월 스페인 국채 만기 도래분은 9월의 3.6배나 되기 때문에 등급 강등이 상당한 부담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무디스도 스페인 신용등급을 2단계 이상 낮출 수 있다"며 "스페인의 부담이 커지면 위기가 프랑스로 전이될 가능성이 있다. 그렇게 되면 시장에 매우 큰 악재가 될 것이다"고 내다봤다.
그는 "영국 은행 신용등급 강등도 국가 신용등급 강등의 전조로 볼 수 있다"며 "그리스 문제가 여전히 불투명한 상황에서 신용등급 연쇄 강등은 충격이 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대 경제학부 안동현 교수는 "신용위기는 진행 중이다. 현재 그리스 국가 부도 가능성과 은행의 유동성 위기가 문제의 양 축이다. 그리스, 이탈리아 등의 국채를 많이 보유한 프랑스와 독일계 은행들이 위태로운 상황"이라고 진단하고 "ECB가 유동성을 풀겠다고 했지만, 그것으로 그리스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원인을 건드리지 못하고 증상만 어떻게 해보려는 식"이라고 ECB의 유동성 공급 처방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근본적으로는 그리스 부도를 어떻게 처리할지 청사진이 나와야 한다"며 "유로존에 계속 포함할지 자발적 탈퇴를 유도할지 두 가지 방향이 있다"고 처방을 내놨다.
신영증권 김세중 이사는 "포르투갈, 이탈리아를 넘어 영국으로까지 신용등급 강등이 확산하고 있는 것은 위기가 전염되고 있다는 뜻"이라며 "유럽은 이제 재정위기가 금융위기뿐만 아니라 실물위기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에 직면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각국은 위기를 `너의 문제'가 아닌 `우리의 문제'로 인식하고 공조를 강화해 효과적인 대책을 내놓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KTB투자증권 정용택 이코노미스트는 "앞으로 미국 은행들의 신용등급도 강등될 수 있다"며 "신용등급 연쇄 강등은 유럽 위기가 확산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진단했다.
또 "해당 국가나 은행의 자금 조달 비용이 증가하는 부정적 영향이 예상된다. 그러나 그만큼 유럽 국가들의 공조를 압박하는 긍정적 효과를 낼 수도 있다"며 "프랑스의 신용등급마저 강등되면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지만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조만간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회담, 다음달 G20 정상회담에서 미국과 중국의 대응이 주목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