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조영진 기자] 곡물이나 철광석 같이 포장되지 않은 건화물을 운반하는 벌크선 운임지수(BDI)가 약 10개월 만에 2,000 포인트를 회복했다.
선박 공급 과잉, 운임 하락, 고유가, 해적 위협이라는 4중고에다 최근에는 유럽과 미국의 동반 경기 침체로 물동량까지 감소하는 최악의 상황이 예상되며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을 정도로 완전히 코너에 몰렸던 해운업계는 모처럼의 희소식에 "숨통이 틔였다"며 반색하고 있다.
중국과 인도, 브라질 등 주요 신흥국의 철광석과 석탄 수요증가로 인한 물동량 증가와 노후 선박을 폐기하는 등 해운사들의 자체 구조조정 등으로 운임이 오르면서 3년 동안 지속된 해운업 침체가 드디어 바닥을 찍고 본격적으로 반등할 것이란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특히 이번 희소식으로 인해 벌크선 사업 위주인 STX팬오션은 큰 수혜를 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러나 컨테이너선 운임은 여전히 약세에 머물러 이 사업 비중이 큰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은 어려움이 지속되고 있다.
10일 한국해양수산개발원과 해운업계에 따르면, 지난 7일 1,967포인트에서 시작한 BDI는 하루 동안 33포인트 상승하며 2,000고지를 탈환했다. BDI가 2,000선을 넘어선 것은 2,028을 기록한 지난해 12월16일 이래 약 10개월 만이다.
해운경기가 초호황이던 2008년 5월 11,793으로 역대 최고점을 찍었던 BDI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물동량이 크게 줄면서 운임이 폭락하기 시작, 올 2월7일에는 1,045까지 미끄러졌다.
3년 전에 벌크선 운임이 1만원이었다면 올 상반기까지는 10분의 1 수준인 1000원 정도를 받은 셈이다.
그러다 지난 8월 중순부터 본격적인 회복기에 접어들었으나 2,000선을 눈앞에 두고 등락을 거듭해 업계 관계자들의 애를 태워왔다.
양홍근 한국선주협회 이사는 "불가능할 것 같았던 2,000 포인트를 회복함으로써 해운업계에 대한 투자 심리가 개선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양홍근 이사는 "그동안의 경우에 비춰보면 BDI 지수가 심리적 저항선을 돌파한 경우에는 상승 장세가 지속된 경우가 많았다"며 "투자 심리가 살아나면 금융권 등에서 원자재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해운업계에 대한 대출에도 숨통이 트여 시황 회복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4중고에다 유럽과 미국의 경기침체가 여전한 가운데서도 BDI가 최근 반등한 이유는 중국, 인도, 브라질 등 신흥국의 철강 수요가 급증하면서 원료인 철광석과 석탄의 수입을 늘렸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 7월 중국 석탄 수입량은 사상 최고치인 1753만t으로 전년 동월 대비 34%나 증가했다.
또 해운사들이 올해 들어 노후 선박을 해체하거나 매각하는 방식으로 선박 수를 줄인 것도 운임이 상승하며 2,000선을 돌파하는 원인이 됐다. 올해 들어 9월 초 현재까지 전 세계에서 해체된 선박은 모두 644척으로, 이는 이미 지난해 전체 폐선 숫자를 넘어선 것이다.
국내 해운사들도 이러한 선박 구조조정에 동참, STX팬오션은 올해 들어 2척을 폐선하고 8척을 매각하며 모두 10척의 노후 선박을 정리했다. 이러한 자산 매각으로 국내 해운사 중에는 유일하게 2분기 예상을 크게 뛰어넘는 `깜짝 흑자`를 기록하기도 했다. 현대상선은 2척, 한진해운은 1척의 선박을 각각 해체ㆍ매각했다.
대신 신조(새로 만드는 선박) 발주는 늘리고 있다. 현대상선은 1만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가 넘는 초대형 컨테이너선 5척을 대우조선해양에 발주했으며, 한진해운도 향후에 1만3000TEU급 컨테이너선 5척을 발주할 예정이다.
하지만 BDI지수 2000 돌파를 해운업 본격 회복으로 보기 어렵다. 최근 BDI지수 상승은 중국 인도 등 특정 지역의 중대형 벌크선이 중심이 된 것으로 전반적인 운임 현황은 여전히 약세라는 분석이다. 실제 가전제품 등을 운송하는 컨테이너선 운임은 오히려 하락세다.
해운업계 관계자들은 BDI가 2,300~2,400선까지 올라줘야 화물 운송시 손익 분기점을 넘길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한 중견 해운사 대표는 "BDI가 2,000을 밑돌면 운송을 해도 남는 게 없는 구조"라며 "최소 2,300~2,400은 돼야 손익이 균형을 이루고, 3,000을 넘으면 금융 부채를 갚아나갈 수 있는 수준이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