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양진석 기자] 국내 증권사들이 골드만삭스와 같은 대형 투자은행(IB)을 꿈꾸며 프라임브로커(전담중개업자) 사업 등 IB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자기자본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유상증자에 나서는 등 본격적으로 몸집을 불리고 있다.
가장 먼저 KDB대우증권이 대규모 유상증자를 발표한데 이어 경쟁심리가 자극된 우리투자증권과 삼성증권까지 IB를 위해 필요한 자본확충을 위해 유상증자에 나섰다. 금융위원회가 지난 7월 자본시장법 개정안에서 제시한 프라임브로커(전담중개업자) 사업 등 IB 업무 수행에 필요한 자기자본 기준 3조원을 충족하기 위해서다.
지금까지 이루어진 유상증자 규모는 KDB대우증권이 1조1242억원으로 가장 크고, 우리투자증권 6000억원과 삼성증권 4000억원 순이다.
증권업계에서는 이들 '빅3' 증권사에 이어 현대증권과 한국투자증권도 IB 사업에 뛰어들기 위해 유상증자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 증권사들도 자기자본이 2조원을 넘는 대형증권사들이기 때문이다. 3조원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 필요한 유상증자 규모는 현대증권은 6000억원, 한국투자증권은 8000억원이다.
지난 6월 말 현재 증권업계의 자기자본 규모를 보면 삼성 2조7천861억원, 우리 2조6천991억원, KDB대우 2조6천930억원, 현대 2조5천683억원, 한국투자 2조2천697억원 등이다.
하지만 현대증권 관계자는 11일 "(유상증자) 시기나 방법을 검토하고 있으나 아직 결정된 것은 없다"고 밝혔고, 한국투자증권 관계자는 "내부 논의를 계속 하고 있지만 프라임브로커 사업에 참여할지를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짧은 시간 안에 유상증자 계획을 발표할 가능성은 적다"고 말하는 등 애써 태연한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현대증권과 한국투자증권이 유상증자에 나서는 것은 사실상 시간문제지만, 이들이 약간 주저하는 모습을 보이는 이유는 최근 주식시장이 워낙 불안하기 때문이다. 유로존 재정위기와 미국 경기 침체 등으로 인해 증시는 여전히 바람 앞에 등불이고, 주가는 최근 반등의 기미를 보이고 있기는 하지만 연중 최저 수준의 바닥을 기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유상증자를 할 경우 저가에 유상증자를 실시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 또 유상증자를 실시한 이후 계속해서 주가가 바닥을 칠 경우, 더 큰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다. KDB대우증권이 1조가 넘는 유상증자를 실시한 것도, 주가가 더 바닥을 치는 최악의 상황까지 감안한 것이었다.
또 유상증자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줘야 할 대형 기관도 시장에 돈이 말라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것에 대해 손사래를 치고 있는 것도 문제다.
하지만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유상증자에 나설 수 있는 대형 증권사와 달리 유상증자를 쉽게 추진할 수 없는 중대형사들의 고민은 깊어지고 않다. 자기자본 3조원 기준을 맞추는 것이 현실적으로 수월하지 않고 유상증자나 합병을 통해 덩치를 키워도 자본 대비 수익성이 얼마나 날지를 확신할 수 없어 이들 중대형 증권사들은 IB 업무 참여 여부를 놓고 저울질에 들어간 상태다. 하지만 유상증자 등을 통해 IB업무에 뛰어들지 않을 경우 지금과 같은 덩치로 사업을 해 나가는 게 쉽지 않다는 것도 문제다.
중대형 증권사들인 대신증권과 금융지주 계열사인 신한금융투자(2조751억원), 하나대투증권(1조5천163억원)는 현재 IB 업무 참여에 대해 매우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대신증권 관계자는 "프라임브로커 등 대형 IB 사업을 준비하는 팀이 있지만, 구체적인 방법은 정해지지 않았다"고 밝혔고, 신한금융투자와 하나대투증권은 지주회사가 결정할 문제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하나금융지주는 현재 외환은행 인수를 추진 중이어서 증권사의 증자를 검토할 여력이 많지 않은 상황이다.
미래에셋증권(1조9천120억원)과 동양종금증권(1조2천410억원)은 대형 IB사업을 사실상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래에셋증권 관계자는 "자기자본 3조원을 맞추기 쉽지 않고 프라임브로커 업무를 통해 얼마나 이익을 거둘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해당 사업을 하지 않는 쪽으로 이미 결정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