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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환율조작국이라 비판하던 일본, 외환시장 개입 나서

한국과 중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비판하던 일본도 외환시장 개입에 나섰다. 올해 들어 벌써 3번째 개입이며, 앞으로도 엔고를 저지하기 위해 계속해서 개입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일본 정부의 개입에도 불구하고 엔고는 계속되고 있어 일본의 시름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 재무성은 31일 오전 해외 외환시장에서 엔화가 달러당 75.32엔을 기록하며 사상 최고치로 치솟자 엔화를 풀어 달러를 사들이는 전격적인 시장개입을 단행했다.

최고 수준으로 치솟은 엔화값을 끌어내리기 위해 88일만에 다시 한 번 외환시장에 개입한 것이다.

아즈미 준(安住淳) 일본 재무상은 이날 오전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오늘 오전 10시25분에 도쿄외환시장에서 엔화를 팔고 달러화를 사들이는 방식으로 시장개입을 했다"고 발표했다. 규모는 밝히지 않았다.

일본 당국의 개입 직후 이날 오전 오세아니아 외환시장에서 한때 달러당 75.32엔의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엔화값은 달러당 78엔대로 급락했다.

이날 일본 정부의 개입은 올들어 3월과 8월에 이어 3번째 개입이었다.

동일본대지진 직후인 지난 3월 18∼19일에도 재무성은 엔화가 달러당 76엔대로 급등하자 2조5천억엔을 풀어 엔고 저지에 나섰다. 당시 개입은 선진 7개국(G7)과 공조 형태였지만 일본 재무성이 주도했다.

그리고 지난 8월 4일 엔화가 달러당 77엔대였을 때도 4조5천억엔을 투입해 시장에 개입했었다.

◇ 마지노선 달러당 75엔

일본 정부는 올들어 엔화가 달러당 75엔대를 위협하면 여지없이 개입을 되풀이하고 있어 달러당 75엔대를 마지노선으로 설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엔고 흐름은 일본 경제의 펀더멘털(기초)이 강해서가 아니라 엔화가 달러와 유로화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전 자산이라는 이유로 매수가 몰리고 있다. 유로화는 그리스 등 유럽 국가들의 재정 위기로, 달러는 미국의 경제 침체 우려로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엔고가 멈추지 않을 경우 수출 기업들의 채산성 악화로 생산 기반이 무너지고 해외 공장 이전으로 급속한 산업공동화가 전개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자동차와 전자, 철강 등 한국과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고 있는 대기업들은 일본이 자유무역협정(FTA)에 뒤진 상태에서 엔고가 계속될 경우 국제 경쟁력을 잃어버릴 것이라며 정부에 외환시장 개입을 호소해왔다.

엔고를 견디지 못한 기업들은 슬금슬금 동남아시아 등 해외로 생산 거점을 옮기고 있다. 지난 3월 발생한 동일본대지진 이후 이런 현상은 심화하고 있다.

지난 9월초 출범해 집권 2개월을 맞은 노다 내각으로서는 동일본대지진의 피해 복구를 위한 증세, 다자간 자유무역협정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참여 문제 등 현안이 산적한 상황에서 환율을 안정시켜 산업계와 국민의 불안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

◇ 일본 정부 시장 개입에도 효과 없어

하지만 재무성의 시장개입이 엔고 저지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잠시 엔고를 억제하는 효과는 있었지만 추세를 되돌리지는 못했다.

지난 3월 개입 당시 엔화는 일시적으로 달러당 85엔대까지 내려갔지만 곧바로 80엔선 밑으로 떨어지면서 효과를 보지 못했고, 8월 개입때도 미국 국가신용등급 강등이라는 대형 악재가 발생해 효과가 거의 없었다.

약발은 제한적이지만 정부가 언제든 시장에 개입할 수 있다는 의지를 시장에 보여주는 '시위 효과'를 기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개입의 늪에 빠진 일본

하지만 인위적 시장 개입을 되풀이할 경우 국제 금융시장에서 '환율 조작국'으로 인식돼 선진국으로서의 위상에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작년 9월 일본이 6년6개월만에 외환시장에 개입한 이후 빈도가 잦아졌지만 엔화 강세가 꺾이지않자 일본 정부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유럽의 재정위기나 미국의 경기침체가 언제 종료될지 불투명하다는 점이 엔화 강세를 부추기고 있다. 정부의 고강도 개입에도 불구하고 시장에서는 달러당 70엔대를 지키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특히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총리는 재무상 시절 한국과 중국의 외환시장 개입을 강도높게 비판했었다. 노다 총리는 재무상이었던 작년 10월 한국이 외환시장에 수시로 개입함으로써 주요 20개국(G20) 정상회담 의장국으로서의 역할을 의심받고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재무상이 공식석상에서 특정국을 거명해 환율 정책을 비판하는 것은 상식 밖의 일인데다 자국 외환시장에는 개입하면서 한국을 문제삼는 이중적 행태를 보였다는 점에서 우리 정부는 발언 철회를 요구하는 등 강력하게 반발했다. 일본은 계속적인 시장 개입으로 인해 한국과 중국 등의 시장 개입에도 할 말이 없어지게 됐다.

아즈미 준(安住淳) 재무상은 이날 시장 개입을 단행한뒤 "(최근의 환율은) 유감스럽게도 일본의 실질 경제를 반영하지않고 있다"면서 "(시장 참가자들이) 납득할때까지 개입을 계속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