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양진석 기자] 카드업계와 은행업계에 이어 이번에는 증권업계의 거래 수수료가 도마 위에 올랐다.
수수료로 매년 6조원 이상씩 벌어들이고 있는 증권업계도 고통 분담 노력에 동참해야 한다는 여론이 조성되고 있고, 금융당국에서도 증권업계의 수수료에 대한 점검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한국거래소와 한국예탁결제원이 연말까지 회원사들로부터 받는 거래 수수료를 면제한다고 발표하자 증권사들도 수수료 인하를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화수분에 비유되는 수수료를 줄이는 문제를 놓고 증권 업계 내부에서는 주식 거래 수수료가 이미 최저 수준인데다, 은행과 달리 증권사에는 수수료가 주요 수입원이라는 이유에서 반발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따라서 증권사들이 수수료 인하에 동참해도 한시적인 조치에 그칠 가능성이 큰 만큼 이번 기회에 증권 거래의 문제점을 종합적으로 개혁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실제로 증권사들이 수수료를 인하하겠다고 밝혔지만, 연말까지만 한시적으로 인하되고 내년부터는 원상 복귀가 된다.
◇ 수탁수수료 연평균 5조2천억
국내 63개 증권사가 거둔 전체 수수료 수익은 2006년부터 2010년까지 연간 6조~9조원에 달했다. 회계연도별 수수료 수익은 2006년 6조1천억원, 2007년 9조3천억원, 2008년 6조7천억원, 2009년 8조원, 2010년 8조2천억원 등이다.
작년 수수료 수익 8조2천억원 가운데 주식 등을 위탁매매하고 투자자로부터 받은 수탁수수료도 5조3천618억원에 달한다. 5년간 연평균 수탁수수료도 5년간 연평균 5조2천563억원에 이른다. 그리고 상위 10개 증권사의 수탁수수료가 이중 절반이 넘는 3조원이다.
지난해 수탁수수료 1위인 대우증권은 1년간 4천311억원을 벌었다. 삼성증권, 우리투자증권, 현대증권, 한국투자증권, 신한금융투자 등도 3천억원 이상씩 챙겼다.
수탁수수료 수익은 대우증권 4천311억원이 가장 많았고, 뒤를 이어 삼성증권(4천275억원), 우리투자증권(3천863억원), 현대증권(3천640억원), 한국투자증권(3천332억원), 신한금융투자(3천152억원) 등도 많은 수익을 올렸다.
펀드 취급 수수료도 지난해는 6천690억원이었고, 5년간 연평균 펀드 취급 수수료는 8천36억원에 달했다.
펀드 수수료는 증권사별 격차가 커 상위 10개사(5년간 연평균 6천916억원)가 전체의 86.0%를 차지했다.
작년에는 펀드 관련 수익이 미래에셋증권이 1천306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한국투자증권(965억원), 삼성증권(718억원), 하나대투증권(619억원) 등의 순이었다.
주식 위탁매매나 펀드 취급으로 증권사가 챙긴 수수료 수익은 한해 평균 7조6천원으로, 당기순이익의 2~3배나 되는 규모다.
증권업계의 온라인 주식거래 수수료는 최저 0.011~0.015% 수준까지 내려왔으나 수수료 규모 자체는 줄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증권사 관계자는 "수수료율이 높아서 수수료 수익이 많은 게 아니다. 주식 매매 수수료율 자체가 0.015% 수준까지 내려간 상황이지만 주식시장 자체가 매년 성장하고 투자자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따라서 이미 제로(0) 수준까지 내려간 수수료율을 추가로 낮추기는 어렵다는 업계의 반응도 만만찮다.
◇증권업계 여론 부담에 수수료 인하 저울질
최근 은행들은 `탐욕스럽다'는 여론을 의식해 수수료 인하와 사회공헌활동 강화에 나서고 있다. 증권사들의 수수료 인하 움직임도 같은 맥락에서 나온 반응이다.
수수료 인하에 방아쇠를 당긴 것은 거래소와 예탁원으로, 주식 투자자와 회원 증권사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수수료를 한시적으로 면제하기로 했다. 거래소는 지난해 회원사에서 3천256억원을 거래수수료로 받았고, 올해는 8월까지 이미 2천673억원을 징수했다. 하지만 이를 면제하기로 한 것이다.
금융투자협회도 증권사들의 거래수수료 인하를 적극 유도하기로 했다. 금투협은 수수료 인하 현황에 대한 모니터링을 통해 수수료 인하 분위기 조성에 적극 나서는 한편, 업계가 자율적으로 투자자예탁금 이용료율 인하와 신용공여 연체이자율 개선을 유도할 계획이다.
금융당국의 수수료 면제 효과가 일반 투자자에게 나타나려면 증권사의 수수료가 내려가야 하지만, 증권사들의 반응은 엇갈리고 있다.
미래에셋증권은 31일 한국거래소와 한국예탁결제원의 한시적 수수료 면제 조치에 맞춰 1일부터 연말까지 주식, 지수선물, 지수옵션 매매수수료를 내릴 방침이라고 밝혔다.
수수료 인하 폭은 주식 0.0054%, 지수선물 0.00044%, 지수옵션 0.013% 등이다.
미래에셋증권측은 수수료 인하에 따라 홈트레이딩시스템(HTS)을 통해 주식 거래 시 1천만원당 매매수수료가 기존에 2천900원에서 540원이 줄어든 2천360원이 된다고 설명했다.
이 증권사는 또 상장지수펀드(ETF) 종목을 대상으로 이날부터 연말까지 온라인 매매수수료 무료 이벤트를 실시한다.
삼성증권도 1일부터 12월 말까지 주식, 선물, 옵션에 대한 위탁수수료를 인하한다고 31일 밝혔다.
거래소와 예탁원의 수수료 인하 폭을 100% 반영해 수수료 인하 폭은 주식 0.004623%포인트, 선물 0.0003036%포인트, 옵션 0.012654%포인트로 책정했다.
삼성증권은 이번 인하로 인해서 온라인 주식 위탁매매수수료는 기존 `0.0782~0.1482%+1500원'에서 '0.0736~0.1436%+1500원'으로 낮아진다고 설명했다.
이 회사는 지난해 7월부터는 상장지수펀드(ETF)에 장기 투자하는 고객에게 수수료를 면제해 주고 있다.
KDB대우증권 역시 한국거래소와 예탁원의 한시적 수수료 면제 조치에 맞춰 1일부터 12월 말까지 주식, 선물, 옵션에 대한 위탁수수료를 인하한다고 31일 밝혔다.
수수료율 인하 폭은 주식 0.004623%포인트, 선물 0.0003036%포인트, 옵션 0.012654%포인트 등이다.
우리투자증권, 하나대투증권, LIG투자증권 등도 수수료를 내릴 예정이다. 현대증권, 한국투자증권, 신한금융투자, 키움증권 등은 수수료 인하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한 증권사는 주식 수수료 인하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으나 펀드 수수료는 손볼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또 다른 증권사는 주식 수수료 인하는 고려하지 않지만, 펀드수수료와 예탁금 이용료, 신용거래 수수료는 낮출 계획이라고 말했다.
수수료 인하가 불가능하다는 증권사도 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거래소와 예탁원의 인하는 회원인 증권사의 고통 분담을 위한 것이다. 따라서 수수료를 일괄적으로 낮추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최근 금융권에 쏟아진 비판적인 여론을 고려하면 마냥 버티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다른 증권사 관계자는 "3분기 영업실적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수수료 인하는 부담이 될 수 있지만, 국민 정서상 수수료를 내려야 하는 분위기여서 고심하고 있다"고 전했다.
◇예탁금 이용료 개선해야…자본이득세 도입 주장도
거래소와 예탁원의 이번 수수료 면제는 연말까지 한시적으로 적용된다. 각 증권사가 동참한다고 해도 투자자들에게 돌아갈 혜택은 크지 않다.
금융투자업계는 27일 5대 금융업협회가 사회적 책임 강화 방안을 발표한 자리에서 위탁매매 수수료를 낮추고 투자자 예탁금 이용료와 신용공여 연체이자율에 대한 수수료 책정 기준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일시적인 수수료 인하보다는 이번 기회를 증권거래의 문제점을 바로잡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자본시장연구원 신보성 금융투자산업실장은 "증권사 거래 수수료가 자율화된 이후 매우 낮은 수준까지 내렸다. 펀드판매나 랩 수수료가 상대적으로 높은데, 그 수준에 합당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느냐를 봐야 할 것이다. 불완전판매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재만 숭실대 금융학부 교수는 "증권사 수수료는 시장에서 결정하는 것이 가장 좋다. 수수료 인하가 투자자들의 수익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거래비용이 적어지면 매매가 잦아져 개인투자자들의 손실이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수수료보다는 거래세가 문제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차라리 주식양도로 얻은 이득에 매기는 자본이득세가 도입돼야 한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수수료보다 거래세로 더 큰 비용이 나간다. 주식 거래에서 수익을 내지 못한 투자자까지 일률적으로 세금을 내도록 하는 거래세보다는 수익을 거둔 투자자에 한해 과세하는 제도가 경제정의에 부합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