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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외이사 반대로 부결된 안건 0.05%뿐"… 기업 거수기 입증

[재경일보 양진석 기자] 대기업집단 소속 회사들의 사외이사 비중이 높아졌지만 이사회 안건 중 사외이사 반대로 부결된 건은 0.1%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로 인해 지배주주의 독단적 경영을 견제하기 위한 사외이사제도가 사실상 대기업을 위한 거수기로 전락하며 `유명무실'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또 대기업집단 소속 회사들은 소수 주주의 의결권 행사를 강화하거나 쉽게 하기 위한 제도의 도입실적도 상당히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뿐만 아니라 상당수 대기업집단의 총수 일가들은 이사로 등재하지 않고도 경영권을 행사, 회사 경영에 따른 책임은 회피하면서 권한만 누린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위원장 김동수)는 6일 `대기업집단 지배구조 현황 정보공개'를 통해 지배주주의 독단적 경영을 감시하기 위해 설치한 이사회의 사외이사 비율은 43개 대기업 집단에서 47.5%(703명/1천481명)로 작년보다 1.2% 포인트 증가했다고 밝혔다. 또 총수가 있는 집단의 사외이사 비율(47.0%)이 총수가 없는 집단(51.8%)보다 4.8% 포인트 낮았다고 지적했다.

사외이사의 평균 이사회 참석률은 87.8%였으며, 총수없는 집단의 사외이사 출석률은 95.2%였으나 총수있는 집단 사외이사의 참석률은 87.2%에 불과해 총수가 있는 집단의 사외이사 활동이 상대적으로 저조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시가총액 상위 100개사 중 대기업 집단 소속 79개 회사의 작년 이사회 운영 결과 상정안건 2천20건 가운데 사외이사 반대로 부결된 안건은 1건에 불과(0.05%)했고, 2천13건(99.65%)는 그대로 가결처리됐다.

공정위는 "높은 사외이사 비중에도 불구하고 지배주주의 경영을 효과적으로 감시ㆍ견제하고 있는 지는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사외이사의 공정한 추천을 위해 마련된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를 설치한 회사는 전체 대상 218개사 가운데 103개사(47.2%)로 작년보다 4개사 늘었고, 이사의 직무수행과 회계를 감사하는 감사위원회를 설치한 회사는 133개사(61.0%)로 작년보다 10개사 증가했다.

또 공정위는 43개 대기업집단 가운데 총수가 있는 35개 대기업 집단의 총수일가 이사는 418명으로 전체(4천913명)의 8.5% 차지했다고 밝혔다. 이는 작년 총수일가 이사의 비중 9.0%보다 0.5% 포인트 줄어든 것이다.

이사로 등재한 총수는 142명(2.9%), 이사로 등재한 총수의 친족은 276명(5.6%)으로 집계됐으며, 상장사의 총수일가 이사등재 비율(11.3%)이 비상장사(7.4%)보다 3.9%포인트 높았다.

세아(28.75%), 부영(25.53%), 한진(20.00%) 총수일가의 이사등재 비율이 높은 반면, 삼성(0.31%), LG(2.06%), 대한전선(2.30%) 등은 총수일가의 이사등재 비율이 낮았다.

총수일가는 주로 대기업집단의 주력회사(대부분 상장사)나 가족기업 형태에 가까운 비상장회사에 이사로 등재하는 경향이었다고 공정위는 분석했다.

특히 삼성ㆍ현대중공업ㆍ두산ㆍ신세계ㆍ대림 등 6개 대기업 집단의 총수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등기이사를 단 한 곳도 맡지 않아 총수들이 `권한만 갖고 책임은 지지 않는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또 경영진의 성과를 평가하고 적절한 보상수준을 결정하는 보상위원회를 설치한 회사는 작년보다 7개 늘어난 28개사(12.8%)였고, 특수관계인을 대상으로 하는 거래를 심사ㆍ승인하는 내부거래위원회가 있는 회사는 23개사(10.6%)로 작년보다 4개사 많았다.

하지만 집중투표제(2인 이상 이사의 선임에서 주식 1주마다 선임할 이사수와 동일한 수의 의결권을 부여하는 제도) 등 소수 주주의 의결권 행사를 강화하거나 용이하게 하는 소수주주 관련 제도의 도입실적은 여전히 상당히 저조했다고 공정위는 평가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집중투표제 도입회사는 전체 회사 218개사 중 8개사(3.7%)에 불과했고, 서면투표제(주주가 총회에 참석하지 않고 투표용지에 필요한 사항을 기재해 의결권을 행사하는 제도)는 25개사(11.5%)였으며, 전자투표제(주주가 총회에 참여하지 않고 전자적 방식으로 의결권 행사하는 제도)를 도입한 회사는 단 한 곳도 없었다.

특히 집중투표제를 도입한 8개 상장회사 모두 이사의 임기를 각기 달리 정해, 동시에 선임할 수 있는 이사수를 줄이는 시차임기제를 채택, 집중투표제를 통한 소수주주의 의결권 행사를 약화시킬 우려가 있다고 공정위는 지적했다.

공정위는 "현행 대기업집단 현황 공시자료만으로는 지배구조를 제대로 파악하는데 한계가 있다"면서 "이사회 상정안건에 대한 사외이사의 역할 등 운영실태를 공개할 수 있도록 규정을 개정하고, 대기업집단의 지배구조현황 분석을 주식소유현황, 내부거래현황 등과 연계 실시해 분석의 현실 적합성을 제고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