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유재수 기자] 평소 "IT업체들이 어떻게 돈을 버는지 알 수 없어 이들 업체에 투자하지 않는다"면서 주로 금융주와 소비재 중심으로 투자해왔던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이 IT주 투자에 나서 주목된다.
워런 버핏 버크셔 헤서웨이 회장은 14일(현지시간) 미국 경제전문 방송 CNBC에 출연해 올들어 지난 2분기와 3분기에(올 3월부터 9월 30일까지) IBM 주식 6천400만주(5.6%)를 주당 평균 170달러를 들여 총 107억 달러 어치 매입했다고 밝혔다.
버크셔해서웨이가 그동안 투자한 기술주 가운데 최대 규모이며, 버크셔해서웨이가 보유한 IBM 주식 가치는 그동안 주가가 오르면서 121억달러까지 증가했다. 이는 버크셔해서웨이 보유 지분 중 136억달러 규모인 코카콜라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셈이다.
버핏은 그동안 IT 기업은 장기적인 성과를 예측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투자를 꺼려왔기 때문에 이번 투자는 이례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이날 발표된 3분기 지분변동 보고서에 따르면, 버크셔해서웨이는 IBM 뿐만 아니라 반도체 업체 인텔과 함께 위성TV 업체인 다이렉TV 지분도 늘렸다.
버핏은 IBM 주식을 매입한 이유에 대해 "IBM의 2015년까지 중기 로드맵을 인상 깊게 지켜봤고 IBM의 연간 사업보고서를 계속 눈여겨봤다"고 밝혀, IBM 보고서를 검토하는 가운데 IBM의 전략과 경영 전망을 높이 평가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드러냈다.
이와 관련해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버핏 회장은 과거부터 IT업체가 어떻게 돈을 벌어내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해왔었다”며 81세 버핏 회장에게 IT업종은 이해가 쉽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CNBC 인터뷰에 출연한 버핏 회장은 “IBM은 장기적인 로드맵을 만들어 명확한 목표를 제시했고, 주주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알고 있다”고 말했다. WSJ는 이에 대해 “버핏 회장이 수익구조나 목표를 명확히 제시한 IBM에 매력을 느낀 것”이라고 분석했다.
IBM은 2015년까지 주당 20달러 수준의 순익을 기록할 것이라며 30%의 매출은 신흥 성장 시장에서, 200억달러는 인수합병에 사용하겠다는 등 명확한 계획을 밝힌 바 있다.
IBM이 IT 기업이기는 하지만 컨설팅 업체에 가까운 것도 투자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IBM은 1980년대 PC 시대를 연 장본인이지만 지난 2005년 PC부문을 중국 레노버에 매각하고 하드웨어·소프트웨어·컨설팅 등 다양한 분야에서 매출을 올리고 있다. 그래서 버핏은 CNBC와의 인터뷰에서 “IBM은 PC업체라기보다는 컨설팅 업체에 가깝다”고 말했다.
버핏은 특히 IBM으로부터 버크셔해서웨이 일부 계열사의 정보기술 부문에 대한 컨설팅을 받으면서 IBM의 장점을 알게 된 것으로 보인다. 평소 잘 아는 기업에만 투자한다는 그의 원칙을 지킨 것이다.
IBM의 주가는 지난달 14일 사상 최고치인 190.53달러를 기록한 바 있지만, 이것을 최고점으로 보지 않고 앞으로 IBM의 성장을 더 높게 평가한 것으로 보인다. 버핏이 지난 1988년에 코카콜라 주식을 주당 5달러에 매입했을 당시에도 투자자들은 버핏이 코카콜라를 고점에서 사들였다고 비판했지만, 코카콜라의 주식은 주당 68달러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CNN머니는 버핏의 이번 IT 분야 투자에 대해 "버핏이 앞으로 기술주 매입 트렌드를 시작한다는 의미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며 "거품이 많은 다른 IT주와 달리 저평가된 블루칩이기 때문에 버핏이 IBM을 택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대규모 배당이나 자사주 매입도 매력적인 부분으로 평가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