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김유진 기자] 지난해 천정부지로 치솟는 배추값으로 인해 김장대란이 일어났지만, 올해는 정반대 양상이 벌어지고 있다. 배추 대풍작으로 인해 가격이 폭락하고 있다. 이로 인해 지난해의 대박을 노리고 배추 재배를 늘렸던 농민들의 한숨도 깊어지고 있다.
24일 전국 각 지자체와 농협 등에 따르면, 배춧값이 폭등했던 지난해와 달리 올해에는 배춧값 폭락으로 인해 인건비도 채 나오지 않아 출하를 포기하고 산지폐기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농협과 지자체들은 소비촉진 운동을 벌이는 등 대책 마련에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상황은 여전히 절망적이다.
최근 농협중앙회 강원지역본부는 농가와 계약재배한 배추밭 61만7천㎡ 가운데 20.9%인 12만 9천㎡에서 키운 배추를 산지에서 폐기했다.
작업비 등을 고려할 때 포기당 가격이 802원 이상 돼야 하지만 이보다 낮은 가격이 형성됨에 따라 산지 폐기를 하게 됐다는 게 농협의 설명이다.
충남 홍성군에서도 농협과 계약재배가 이뤄진 배추밭을 중심으로 갈아엎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홍성군에서 현재까지 갈아엎은 배추는 은하면 일대를 중심으로 모두 37㏊의 3천540t에 달한다.
산지 배춧값이 포기당 400원 가량으로 작년의 800원대에 비해 절반 이하로 떨어졌고, 일명 '밭뙤기'라고 불리는 포전거래는 가격 하락에 따라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태다.
지난해 가격 상승으로 인한 농민들의 기대심리로 올해 전남지역 김장배추 면적은 3천605㏊로 작년보다 1천53㏊나 늘었지만 이 같은 기대심리는 가격폭락에 대한 우려로 절망으로 되돌아왔다.
배추(상품) 1포기 도매가격은 900원대 이하로 떨어졌으며 지난해 4천100원과 평년가격 1천854원보다도 낮아졌다.
경남의 대표적인 배추 산지 중에 한 곳인 경남 창녕군의 농가들도 지난해보다 턱없이 내려간 배춧값 탓에 울상이다.
창녕군 도천면 송진리의 경우, 지난해보다 재배면적이 배 이상으로 늘었고 올해 날씨가 좋아 대풍작을 이뤘지만 지난해 이맘때 배추 한 포기의 산지가격은 700원선이었으나 최근에는 90원 정도로 폭락했다.
도매상마저 찾지 않아 마을 곳곳의 밭에는 배추가 그대로 방치되고 있다.
배춧값 폭락으로 농민들의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자 전남도는 중앙정부에 농협을 통한 계약물량 확대를 건의하고 소비촉진 강화, 김치 원산지 표시 집중단속, 배추 등 농산물 저온 유통시설 지원확대 등을 요청했다.
또 배춧값 안정을 위해서는 소비 증대가 시급하다고 보고 김치 가공업체의 배추, 무 매입자금과 저장시설 임대자금을 농어촌진흥기금에서 무이자로 융자 지원을 추진하는 방안을 강구 중이다.
충남 서산시는 3년전인 2008년 가격 폭락으로 배추밭을 갈아엎었던 사태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연말까지 다양한 경로를 통해 농산물 직거래 장터를 지속적으로 운영하기로 했다.
서산시는 올해 김장용 가을무, 가을 배추, 양파, 대파 및 쪽파 등 10개 품종의 농산물을 품목당 990㎡ 이상 재배하고, 시와 최저생산비 지원을 위한 계약을 체결한 농가 278곳에 농가당 1품목 1기작을 기준으로 산지폐기를 확인한 뒤 최저생산비를 지급한다.
지역 농협들도 배추 수급안정을 위한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김치공장을 직접 운영하는 아산시 선장농협은 올해 450t을 사들이기로 하고 지난 8월 농가들과 ㎏당 270원에 계약했으나 최근 배춧값 폭락으로 어려움을 겪는 농가를 위해 600t을 ㎏당 240원에 추가로 매입했다.
선장농협의 한 관계자는 "농가의 어려움을 덜어주기 위해 추가 매입을 결정했다"며 "농협과 계약재배를 하지 않은 농가들은 큰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