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조영진 기자] 국내 기업에 대한 외국기업의 특허 소송이 전 방위로 확산되고 있다. 그동안 삼성전자·LG전자 등 IT 분야의 대기업에 특허 소송이 집중됐지만, 최근에는 자동차·섬유·화학·조선중공업 등 산업 전 분야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세계 시장에서 한국 기업의 경쟁력이 높아지면서 해외 기업들의 집중 견제는 이제 피할 수 없게 됐다.
특히 미국 시장을 비롯해 전 세계 시장에서 약진을 거듭하고 있는 현대차에 소송이 잇따르고 있다. 현대차는 3류 자동차 메이커 취급을 받다 독일차와 일본차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새로운 자동차업계의 강자로 급부상한 상황인데다, 한미 FTA로 미국 시장에서 더 경쟁력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앞으로 독일과 일본 경쟁사들의 집중 견제가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현대차는 특허전에 대비해 남양기술연구소 내 특허팀을 특허실로 격상하고 특허 관련 인력도 기존 60명에서 대폭 늘리는 방안을 추진하는 등 대응책 마련에 나서고 있지만 뚜렷한 해결책을 찾기가 쉽지 않아 향후 특허권 분쟁이 현대차의 글로벌 시장 공략에 최대 과제로 부상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현대차가 최신 하이브리드 자동차와 전기 자동차에 들어가는 첨단기술 부분에서 경쟁상대들로부터 특허 소송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하이브리드차는 기술융합산업인데다 현대차가 후발주자여서 소송에 걸리기 쉽다는 지적이다.
15일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현대차는 지난 8월 미국 시장에서 판매되는 쏘나타와 밸로스터에 탑재 예정인 차량원격제어 시스템과 관련해 소송을 제기당했다. 또 지난 10월 스위스 내비게이션 업체 비콘도 미국 델라웨어 법원에 현대자동차 본사와 현대자동차 미국법인, 현대차 앨러배마 생산법인을 상대로 특허권 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현대차는 이미 지난 3월 오디오시스템에 대한 특허 소송전에 휘말려 법원으로부터 280만 달러 규모의 손해배상과 함께 미국에서 판매되는 차량 1대당 14.5달러의 로열티를 지불하라는 판결을 받은 바 있다.
자동차업계에서 특허소송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글로벌 자동차 시장의 패권 싸움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는 가운데 자동차의 품질 및 가격 경쟁력 외에 특허권도 경쟁사를 앞설 수 있는 강력한 무기가 되기 때문이다. 특히 자동차의 품질과 가격 경쟁력은 소비자들의 선택에 따라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여지라도 있지만, 특허권 문제는 경쟁사의 자동차를 완전히 판매금지시켜 시장에서 밀어낼 수 있는 더 강력한 무기다. 이런 가운데 자동차는 온갖 기술이 집약된 분야이다보니 기술과 관련된 특허를 많이 가지고 있는 자동차 회사는 시장과 특허 소송에서 절대적인 우위에 설 수 밖에 없다.
현대차는 특히 최신 하이브리드 자동차와 전기 자동차에 들어가는 첨단기술에 취약점을 가지고 있어, 경쟁상대로부터 이 분야에 있어서 특허 소송을 당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현대차는 최근 연구 개발 투자의 비중을 줄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어 업계에서는 현대차가 판매 신장에 사활을 걸면서 더 중요한 기술 개발과 특허 확보를 게을리 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표하고 있다.
올해 현대차가 등록한 기술 관련 특허는 69개로, 경쟁업체인 일본의 도요타자동차가 등록한 특허 188개의 약 1/3 수준이다. 도요타가 지난 2006년부터 올해까지 등록한 특허는 무려 2,454개로 현대차의 234개의 10배 이상이다.
특히 도요타 자동차는 하이브리드 자동차 분야에서도 선두를 지키고 있어, 최근 하이브리드 자동차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현대차에 대해 집중 견제에 나설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하지만 현대차는 올해 하이브리드 자동차와 전기 자동차 분야에서 독일의 벤츠나 BMW, 일본의 혼다 등의 경쟁사보다 많은 특허를 등록하는 등 도요타에 이어 이 분야에서 두 번째로 많은 특허를 보유하고 있는 상황이기는 하다. 특허 보유 현황을 보면, 닛산르노(58개), 혼다(51개), 폭스바겐(27개), BMW(27개), GM(17개) 등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세계 시장에서 특허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어 우리도 특허 등록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며 "특허는 개수도 중요하지만 핵심기술에 대한 특허를 얼마나 보유하고 있는가가 관건이다. 개수는 도요타에 못 미치지만 최근 신기술에 대한 핵심적 특허 개수는 우리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