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전재민 기자] 산업은행이 내년 1~6월 만기가 도래하는 국내 중소기업 3천여 곳의 대출자금 상환을 1년간 유예해준다.
산업은행은 유럽 재정위기 여파로 중소기업들이 내년 유동성 위기를 겪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중소기업 자금난을 덜어주기 위해 내년 1월부터 6월까지 만기가 도래하는 중소기업 운영자금과 시설자금(약 4조원) 상환을 1년간 유예해주는 내용을 담은 '특별상환유예제도'를 다음달 중으로 시행할 계획이라고 25일 밝혔다.
중소기업이 요청하면 간략한 심사만 거친 뒤 즉시 유예조치를 해주는 방식으로, 한계기업이나 구조조정 대상인 신용등급 B- 이하 기업을 제외한 모든 중소기업이 대상이다.
산은 관계자는 "지금까지는 중소기업이 상환 유예를 요청하면 심사 파트에서 이를 집중적으로 검토했지만 이번 제도가 본격 시행되면 절차가 대폭 간소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에는 중소기업이 자금난에 빠지더라도 해당 중소기업이 상환하도록 한 뒤 다시 대출해주거나 까다로운 검사를 진행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이번에는 문턱을 낮추겠다는 것이다.
그는 이어 "만기 연장을 요청한 중소기업에 대해 대출을 담당한 현업 파트에서 간략한 심사만 거친 후 상환 시기를 조절해줄 계획"이라며 "기업이 어려울 때 우산을 받쳐주는 게 산업은행의 역할이라는 판단에서 시행을 결정했다"고 덧붙였다.
시설자금이나 운영자금은 3개월마다 분할 상환하도록 되어 있는만큼 특별상환유예제도에 따라 산은과 거래하는 3000여 개 중소기업이 혜택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규모는 총 4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산은 관계자는 "정상적인 기업에 대해 자금 상환 부담을 덜어주고자 이번 제도를 마련했다"며 "유동성 위기에 내몰린 중소기업을 지원해 기업 활동을 꾸준히 이어나갈 수 있도록 한다는 게 산은의 판단"이라고 설명했다.
산은은 또 중소기업이 위기를 겪은 후에도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신규 장기 시설투자자금을 저렴하게 공급하는 대출 상품도 내놓기로 했다.
먼저 내년 1월 중으로 신규 시설투자를 위해 상환기간에 원금 50%만 갚고, 나머지는 기한을 연장해주거나 운영자금으로 대환해주는 ‘기한연장조건부(Half Revolving) 대출’ 상품놓을 예정이다. 중소기업의 장기 시설투자자금에 대한 상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것이다.
이 상품을 활용하면, 기계설비에 투자하기 위해 내년에 100억원을 8년 만기로 대출받을 경우 상환기간 내에 50% 정도만 갚으면 된다. 나머지 잔금은 8년 뒤 만기일에 한꺼번에 상환할지, 아니면 기한을 연장하거나 운영자금으로 대환할지는 기업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이런 대출 방식은 1억달러짜리 선박금융에서 20% 정도는 고철값으로 미리 제외하고 8000만달러 정도만 대출하는 방식을 중소기업의 장기 시설투자자금 여신에도 적용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산은 관계자는 “최악의 경우엔 기계설비와 공장부지를 처분할 수 있기 때문에 중소기업들에 설비투자금액의 전부를 상환기간에 갚도록 부담을 줄 필요는 없다”고 설명했다.
산은은 특별상환유예, 기한연장조건부대출 시행과 함께 경영위기를 겪고 있는 중소 해운사를 지원하기 위해 2조원 규모로 조성한 ‘선박펀드(KDB Shipping Program 펀드)’의 운용 시한도 내년 말까지로 1년 연장키로 했다. 현재 남은 1조2000억원으로도 지원이 부족하면 추가로 펀드를 조성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