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션

"약값 차등제 시행 이후", 일부 환자 부감 가중

[재경일보 배규정 기자] 10년 넘게 당뇨와 고혈압을 앓아온 최모(72ㆍ여)씨는 최근 늘 다니던 일반 종합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뒤 약을 받았다가 깜짝 놀랐다.

석 달 전만 해도 두 달치 약값이 12만 원대였으나 지난해 10월부터 약값 본인부담률 차등제가 시행되면서 이제는 15만 원 가까이 올랐다.

최 씨는 "동네의원에서 10년 넘게 치료를 받았지만 잘 걷지도 못하고 차도가 없었는데, 4년 전 종합병원으로 옮긴 후에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며 "나 같은 환자들은 빠듯한 살림에 약값이 비싸도 큰 병원을 계속 다닐 수 밖에 없다"고 하소연 했다.

정부가 상급종합병원에서 경증질환자가 진료를 받을시 약제비 본인부담률을 높이는 '약값 본인부담률 차등제'를 적용하면서 당뇨 등 만성질환자에게 경제적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역차별' 논란이 커지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약값 인상 방안이 대형병원 쏠림을 개선하려는 목적보다는 사실상 건강보험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해 환자의 약값 부담을 가중시키는 꼴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지난해 10월 1일 보건복지부는 환자들이 종합병원으로 몰리는 현상을 막는다는 명목으로 당뇨, 고혈압, 알레르기성 천식, 관절염 같은 만성질환과 감기, 결막염 등 가벼운 질환을 포함한 52개 질환에 대해 병원의 규모에 따라 약제비를 차등조정했다.

그동안 환자들은 병원 규모에 관계없이 약값의 30%를 부담해왔지만, 제도 시행으로 상급 종합병원(3차 진료기관)에서 처방을 받을 경우 50%를 부담하게 됐고, 일반 종합병원(2차 진료기관)은 40%, 동네 의원(1차 진료기관)을 이용할 경우에는 30%를 내게 됐다.

그러나 만성질환 중에서도 최씨처럼 종합병원 당뇨전문의의 진료를 받아야 하는 중증 당뇨환자들은 비싼 약값에 부담을 느끼면서도 1차 진료기관으로 옮기기 쉽지 않은 실정이다.

한국당뇨협회 측은 "약값 부담 때문에 동네병원으로 옮긴 환자가 전체 당뇨환자의 15~20% 정도 되는데 대부분 종합병원으로 다시 돌아온다"며 "제대로 된 진료를 받지 못하거나 수년간 먹던 약을 처방받지 못해 병원 측과 갈등이 생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당뇨환자 등 만성질환자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약값 차등제의 효과도 미미하게 나타나자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는 의료계의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강원도 내 한 상급 종합병원의 당뇨병 전문의는 "병원을 찾는 당뇨환자 1000여명 중 20명도 채 줄지 않은 상태"라며 "당뇨는 지속적인 조절이 중요한 질환이라 전문의가 진료를 봐야 하기 때문에 환자들이 약값에 부담을 느끼면서도 옮기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2010년 통계에 의하면 한국인 사망원인 중 5위가 '당뇨병'"이라며 "당뇨를 경증환자로 분류한 점에 대해서는 학회에서도 논란을 벌이는 중"이라고 말했다.

약값에 부담을 느낀 일부 환자들이 동네의원보다는 의료서비스가 좋고 상급종합병원보다는 약값이 조금이나마 저렴한 일반 종합병원으로 몰리는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실제로 전국 60개 일반 종합병원 중 한 곳인 강원대학병원의 경우 약값 차등제 시행 전후 3개월간 당뇨병 환자를 비교한 결과 차등제 시행 후 내방한 환자수가 약 12% 증가했다.

강원 춘천시의 한 상급종합병원 인근 약국 관계자는 "당뇨나 고혈압 때문에 오신 분들이 인상된 약값 때문에 화를 낼 때는 돈을 받기가 죄스러울 정도"라며 "고혈압, 당뇨, 천식 등은 중증질환으로 분류돼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국당뇨협회 측은 "당뇨는 합병증이 무섭기 때문에 다른 진료과목과 협조가 잘되는 대형병원이라야 중증 환자들이 안심할 수 있다"며 "제도의 전면 재검토가 불가능하다면 이미 오랜 시간 진료를 받아온 환자들은 제외하고 신규 환자들부터 단계적으로 접근하는 방법이라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