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이규현 기자] 전 세계 원유수송의 길목인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싸고 이란과 미국 간 긴장이 갈수록 고조되고 있다. 해협을 봉쇄할 경우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미국의 경고에도 이란은 서방이 자국의 석유 수출을 막을 땐 '행동'에 나서겠다며 연일 위협적인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또 이란이 이웃 산유국들에게 '증산'을 하지 말 것을 경고하고 나섰지만, 사우디 아라비아가 즉각 증산 가능성을 밝히면서 이란과 사우디 간에도 갈등의 전선이 형성되고 있다.
이란은 또 자국의 핵과학자 암살 사건의 배후로 미국 등을 지목하며 "단호한 대응" 의사를 밝혀 이란과 미국 간 관계가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이란, "제재 시 해협봉쇄" 거듭 천명
이란은 미국이 최근 자국에 보낸 '경고성 서한'과 관련해 "새로운 내용이 없다"고 일축했다.
알리 아크바 벨라야티 최고 고문은 16일(현지시간) 서한 내용을 묻는 기자들에게 "새로운 내용이 담겨 있지 않다"고 말했다고 이란의 반관영 파르스 통신이 보도했다. 그는 그러나 구체적인 내용을 언급하지는 않았다.
전날 이란 외무장관 대변인은 이란이 미국으로부터 외교 채널 3곳을 통해 호르무즈 해협 봉쇄와 관련한 메시지를 받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미국은 수전 라이스 미 유엔대사, 테헤란 주재 스위스 대사, 잘랄 탈라바니 이라크 대통령을 통해 이란 측에 호르무즈 해협 봉쇄는 '레드라인(금지선)'이며 이 선을 넘으면 혹독한 대응에 직면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은 그동안 서방이 자국의 원유에 대해 금수 조치를 단행할 경우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겠다고 위협해왔다.
벨라야티는 "석유는 제재를 가할 수 있는 원자재가 아니다"라면서도 "이란은 다양한 방법으로 석유를 팔 수 있고, 이란산 원유에 대한 수요는 생산량보다 많다"고 주장했다.
이란의회의 에스마일 코사리 의원은 이날 이란에 대한 제재가 발효될 경우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석유 수출을 막을 것이라고 경고했고, 마수드 자자에리 합동참모본부 차장도 이란이 필요할 경우 해협을 봉쇄하는 것을 미국이 막을 수 없을 것이라고 거들었다.
◇중동 지역 긴장감도 고조 = 이란은 중동 산유국에 대해서도 경고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란의 석유수출국기구(OPEC) 대표 모하메드 알리 카타비는 최근 "다른 중동 국가들이 유럽연합(EU)의 수요에 따라 원유를 증산하면 이란과 위험한 정치적 게임을 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사우디아라비아는 즉각 증산 의사를 밝혀 중동 내 긴장감도 높아지는 형국이다.
사우디의 알리 알 나이미 석유장관은 CNN과 인터뷰에서 "이란산 원유 금수 제재가 시행되면 원유 부족분을 보충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사우디는 거의 즉시 하루에 200만 배럴가량 증산할 수 있다"며 "우리는 유가가 100달러 선에서 안정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하기도 했다.
EU 외무장관들은 오는 23일 회의를 열어 이란산 원유 금수 조치를 논의할 예정이다.
◇이란 "핵과학자 암살, 단호한 대응" = 이란은 최근 발생한 자국의 핵과학자 암살 사건과 관련해서도 강경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헤이다르 모스레히 이란 정보장관은 "미국과 영국,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는 그들이 한 행동에 대한 결과를 보게 될 것"이라며 "이란은 단호한 대응을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군 고위 참모인 야햐 라힘도 국가 이익을 지키기 위해 모든 수단을 사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란은 핵 프로그램을 중단시키기 위해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의 핵과학자들을 암살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암살 사건 연루 가능성을 부인했고, 이스라엘도 관련 주장을 일축한 상태다.
이란은 현재 핵과학자 암살과 관련된 용의자들을 체포해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아랍어 국영방송 알 아람이 보도했다.
이란의 나탄즈 우라늄 농축시설 책임자로 알려진 모스타파 아흐마디 로샨은 지난 11일 테헤란에서 출근 도중 자신의 차량에 부착된 폭탄이 터지면서 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