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오진희 기자] 기획재정부는 25일 비만세 도입은 저소득층에게 부담이 될 수 있고 물가 인상 요인으로 작용하는 등 부정적 효과가 우려되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비만'이 사회·경제적 문제로 대두되면서 최근 재정적자 문제가 심각한 유럽 국가들이 잇따라 `비만세'(fat tax)를 도입하거나 도입을 추진하고 있지만, 우리 정부는 처음으로 이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기재부는 이날 내놓은 `비만을 바라보는 세계 경제적 시각' 보고서에서 "일부 선진국에서 도입됐거나 논의되고 있는 것처럼 식품 등에 새로운 세금을 도입ㆍ부과하는 방안은 우리 여건을 감안할 때 바람직하지 않다"며 비만세에 대한 반대입장을 분명하게 밝혔다.
비만세는 비만을 유발하는 음식의 소비자에 대해 부가세를 부과해 소비를 억제하는 장치로, 비만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이 너무 크다는 판단에 따라 일부 선진국이 이미 도입한 바 있다.
하지만 재정부는 서구에서 도입된 비만세가 비만율이 상대적으로 낮은 한국에 도입되면 저소득층의 식품 구매력 약화와 물가 인상 등의 부정적 효과가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특히 기재부는 우리나라는 소득이 높을수록 채소·과일을 많이 섭취하는 반면에 저소득층은 지방 함량이 높은 햄버거나 라면 등 패스트푸드를 많이 먹는 경향이 있어 비만세를 도입하면 저소득층의 구매력이 약화할 수 있다고 봤다.
하지만 비만세 도입은 재정적자가 심각한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덴마크는 지난해 10월 세계 최초로 비만세를 도입해 2.3% 이상 포화지방이 함유된 식품에 지방 1㎏당 16크로네(3천400원 상당)을 부과하고 있다.
헝가리도 포화지방(지방)과 당분(설탕), 나트륨(소금)이 많이 함유된 식품과 청량음료에 개당 10포린트(55원 상당)의 부가세를 매기고 있으며, 미국 뉴욕주는 청량음료에 온스당 1센트의 특별소비세를 매기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프랑스도 청량음료 330ml 용량 캔 하나당 0.02유로를 부과하는 등 포화지방이 많은 식품과 청량음료에 세금을 매기고 있으며, 이밖에 재정적자가 심각한 유럽 국가들도 비만세 도입 및 확대를 검토 중이다.
이처럼 선진국이 비만세 도입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은 재정적자가 그만큼 심각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비만 문제가 이미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전세계 비만인구는 10억 명 수준으로 과체중과 비만으로 인한 심장 질환이 전 세계 사망률 1위(연간 1700만명)를 기록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비만인은 정상 몸무게를 가진 사람들에 비해 의료비를 36% 이상 추가 지출하고 있고, 이로 인해 미국 전체 의료비에서 비만으로 인한 비용만 5~7%를 차지하고 있다.
또 비만 근로자가 정상체중 근로자보다 매년 평균 2~5일 결근이 많아 기업 입장에서는 비만 근로자 고용시 1인당 약 800 달러의 비용을 추가로 지불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하지만 기재부는 유럽 국가들과 달리 우리나라에서 비만세는 세제상의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은 모든 품목에 동일하게 부가세가 부과돼 정당한 이유없이 품목별로 차별해 과세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기재부는 "재정적자가 심각한 유럽 미국과 같이 세수확대 수단으로 비만을 논의하기보다는 비만 방지를 위한 성별, 연령별 맞춤형 프로그램 등의 대책을 개발ㆍ보급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우리나라는 아직 비만 문제가 선진국처럼 심각한 수준은 아닌 상황이다.
비만도를 측정하는 WHO의 체질량지수(Body Mass Index)가 30 이상인 성인비율은 비만세를 도입한 헝가리가 17.7%, 프랑스가 16.9%, 덴마크가 11.4%인데 비해 우리나라는 3.2%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