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김진수 기자] 서울 지역 뉴타운·재개발·재건축 대상 1천300곳 중 사업시행 인가 이전 단계에 있는 610곳이 실태조사와 주민의견 수렴 등을 통해 사업시행 여부를 다시 결정한다.
이에 따라 서울 지역 뉴타운 대상 지역의 절반 정도가 원점에서 재검토되게 됐으며, 특히 정비 사업이 제대로 진척되지 않고 있는 영등포뉴타운, 수색·증산뉴타운 등은 뉴타운 지정이 해제될 것으로 보인다.
이로 인해 서울 강북 지역 등의 집값이 하락할 것으로 보이며, 뉴타운 지정 취소가 예상되는 지역에 뉴타운 사업 찬성파도 적지 않아 갈등이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또 뉴타운 해제 비용 부담을 둘러싸고 중앙정부와 서울시 간 충돌도 예상되고 있다.
하지만 정비사업이 시행되는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모든 기초생활수급자는 임대주택을 공급받는 등 세입자 주거권이 보장될 것으로 보여 서민들에 대한 혜택은 강화됐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30일 서소문청사에서 기자설명회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뉴타운·정비사업 신(新)정책구상'을 발표했다.
신정책구상에 따르면, 시와 자치구는 뉴타운·재개발·재건축구역 대상인 1천300개 구역을 실태조사 대상(610곳)과 갈등조정 대상(866곳)으로 나눈 뒤 실태조사와 주민의견 수렴을 거쳐 '구역 및 상황별 맞춤형 해법'을 찾는다.
시는 사업시행 인가 이전 단계인 610곳(아파트 재건축 제외) 중 추진위원회가 구성되지 않은 뉴타운·정비구역(83곳)과 정비예정구역(234곳) 317곳의 경우, 실태조사를 바탕으로 구청장이 의견 수렴을 한 뒤 토지 등 소유자의 30% 이상이 요청하면 올해 안에 구역 해제를 적극 검토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추진위원회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는 등 사업 진척이 지지부진한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지역은 뉴타운 지정이 해제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재개발·재건축 추진위가 구성되지 않은 317곳의 조사 대상지 가운데 뉴타운으로 지정받은 곳은 72곳이며, 영등포구에 전체의 30%인 22개 규격이 몰려있고, 종로구와 은평구도 각각 16곳, 6곳이 위치해 있다.
영등포뉴타운은 주민간 갈등으로 인해 지난 2003년말 2차 뉴타운으로 지정된 이후 7년이 넘도록 사업이 진행되지 않고 있으며, 2009년말 사업시행인가를 받은 1-3구역도 2년째 진척이 없는 상태다.
지난 2007년 4월 지정된 종로구 창신ㆍ숭인뉴타운도 뉴타운 추진으로 일자리를 잃을 것에 대해 여려하는 상가 소유자들의 반대로 14개 구역 중 추진위가 구성된 곳은 한 곳도 없는 상황이다.
은평구 일대 수색·증산뉴타운의 경우, 수색 2·3·5·10·11·12 등 6개 구역에서 추진위가 결성되지 않았다.
610곳 중 추진위원회나 조합이 설립된 293곳은 토지 등 소유자 10~25% 이상이 동의하면 구청장이 실태 조사를 실시해 뉴타운 지정 해제를 추진한다.
각 자치구는 재차 실태 조사와 주민 여론 수렴을 거쳐 추진위 구성 또는 조합 설립에 동의한 토지 등 소유자 2분의 1~3분의 2 혹은 과반수가 동의하면 뉴타운 지정을 해제한다.
뉴타운 지정이 해제된 곳은 마을의 기본 골격을 유지하는 상황에서 노후시설을 보수하고 마을공동체를 복원하는 형태로 정비 사업을 추진하는 이른바 '박원순식 재개발 사업'인 '서울형 마을 만들기'가 추진된다.
사업추진 과정에서 일정 기간 신청 주체가 다음 단계의 절차를 이행하지 않으면 구청장이 재정비촉진구역이나 정비(예정)구역의 취소 절차를 밟는 일몰제도 적용된다.
시는 추진위 승인이 취소될 경우 추진위가 사용한 법정비용 중 일부를 보조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할 예정이다.
반면 주민간 갈등이 없고 대다수 주민이 사업 추진을 원하는 구역에 대해서는 정비계획 수립 용역비의 50%를 지원하는 등 각종 행정지원과 제도개선을 통해 원활하게 사업이 추진될 수 있도록 도울 방침이다.
특히 사업구역에 사는 모든 기초생활수급자에게 세입자 대책 자격 여부와 관계없이 주거복지 차원에서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한다.
또 세입자가 기존 거주 지역에 재정착할 수 있도록 재개발사업이 진행되는 동안은 이미 건설된 재개발임대 공가에 우선 입주했다가 세입자가 원하면 다시 준공된 임대주택에 입주할 수 있도록 허용할 계획이다.
야간, 호우, 한파 등 악천후와 겨울철에는 이주와 철거를 금지하도록 해 세입자들의 주거권도 보장한다.
사업시행자가 임대주택을 추가확보 하는 등 세입자 대책을 강화하면 인센티브를 줘 물량을 늘릴 수 있도록 했다.
이밖에 정비사업 현장의 갈등을 조정하고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50명의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주거재생지원센터를 운영하기로 했다.
박원순 시장은 "영세 가옥주ㆍ상인ㆍ세입자 등 사회적 약자가 눈물을 흘리는 일이 없도록 전면철거 방식의 뉴타운ㆍ정비사업 관행을 인간답게 살 권리를 보장하는 공동체ㆍ마을 만들기 중심으로 바꾸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뉴타운 지정이 취소될 경우, 뉴타운 찬성파와의 새로운 갈등이 빚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또 서울시는 수천억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 뉴타운 해제 비용을 중앙정부도 일부 짊어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어 서울시와 정부 간의 갈등도 예상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