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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여론·정치권 압박에 서민업종철수·일자리 창출 나서

4월 총선, 12월 대선 등 올해 큰 정치이벤트가 예정되어 있는데다 재벌의 문어발식 확장에 대한 비난 여론과 함께 상생을 요구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여야를 불문하고 정치권까지 가세해 연일 재벌 때리기에 나서고 있어 대기업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지나친 '재벌 때리기'가 기업의 투자 의욕을 꺾어 그렇지 않아도 유럽 재정위기 등으로 인한 글로벌 경기 둔화로 어려움이 예상되는 기업들에 더 큰 악재로 작용해 고용 둔화와 경기 침체를 유발시키는 등 역효과가 나타날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재벌의 횡포가 심각한 수준에 달해 정치권의 공세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대기업이 서민업종에서 철수하는 등 장기적인 관점에서 사회공헌 노력을 가속화하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어 '재벌 때리기'가 대기업과 중소기업, 재벌과 서민의 상생을 이끌어내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커지고 있다.

31일 주요 그룹 및 대기업에 따르면, 정치권에서 재벌세 도입, 출자총액제한제(출총제) 부활 등의 논의가 나오면서 재계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어려운 세계 경제 여건 속에서도 사상 최대 규모의 투자계획과 신규채용 계획을 밝히면서 유럽 재정위기 등으로 인한 글로벌 불황을 극복하고자 했던 대기업들은 이제 글로벌 경기보다는 정치권의 움직임에 더 촉각을 곤두세우기 시작했다.

'재계 맏형'격인 삼성그룹은 특히 부담스런 입장이다. 정치권의 공격이 삼성그룹을 겨냥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밖에 없는데다 삼성그룹의 움직임이 다른 그룹이나 대기업에 곧바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주 삼성그룹 계열사인 호텔신라가 제과제빵사업에서 손을 떼기로 하자 LG그룹 계열의 아워홈이 순대·청국장 시장에서 철수하겠다고 밝혔으며, 현대차그룹의 베이커리 사업 '오젠' 중단, 롯데그룹 계열의 베이커리 업체 '블리스'의 사업 중단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정유업계에서는 이란 사태 등으로 국제 석유제품 가격이 오르고 있어 기름값 논란이 다시 일어나지 않을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정유업계에서는 기름값이 오를 경우 정제이윤이 커짐에 따라 실적이 좋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기름값 상승으로 소비자들의 불만이 커지면서 정유사들을 향해 따가운 시선이 확산되는 것에 대해서는 부담스러워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재계가 비난 여론을 감안해 상생, 사회빈부격차해소, 저소득층 지원 등을 위해 예년보다는 활발하게 나설 것이라는 기대도 커지고 있다.

재벌 2,3세들이 '동네빵집'과 '동네상권'을 고사시키지 않기 위해 베이커리 사업에서 속속 철수를 선언한 가운데, '동네슈퍼마켓' 폐업의 주범인 대형마트들도 판매 수수료 인하와 영업시간·일수 규제 등 정치권의 압박이 심해지자 실버사원 채용을 늘리거나 정년을 연장하고 고졸 사업을 적극적으로 채용하는 등 일자리 만들기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홈플러스는 지난해 말 2만1천명의 직원 정년을 만 55세에서 60세로 연장하기로 했으며, 2008년 이후 4년간 만 50∼65세 남녀 1천800명을 채용하는 등 실버 인구 고용도 늘려오고 있다.

롯데마트는 다음달부터 56~60세 시니어 사원 1천여명을 채용해 매장 계산 업무나 온라인 쇼핑몰 배송 등 업무를 맡길 예정이다.

그러나 삼성그룹, 현대차그룹, LG그룹 등 재벌들은 정치권의 공세에 대응해 그룹차원에서 당장 내놓을 구체적인 대책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대기업의 한 관계자는 "사회적 책임은 상당히 오래전부터 심도있게 검토해온 문제로 단계적이고 꾸준히 확대해 나갈 것"이라면서 "단지 `등 떼밀리는' 식보다는 기업이 진정성 있게 노력하고, 그에 걸맞은 평가를 받는 모양새가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