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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주총안건 찬성 95%… 주주권 행사 강화한다더니 '자동거수기'돼

[재경일보 양준식 기자]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영본부가 주주권 행사에서 이전보다 소극적인 행태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가 양적인 측면에서 전년보다 후퇴한 것. 

대통령직속 미래기획위원회의 문제 제기로 지난해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는 뜨거운 관심을 모았지만, 실제로 국민연금이 지난 한 해 반대한 주주총회 안건은 5%에 불과했다. 주주권 행사가 강화되기는 커녕 오히려 더 훌륭한 '자동거수기'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정부와 여당은 올 들어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가 강화될 것이라고 장담했지만 그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31일 경제개혁연구소의 `2011년 기관투자자 의결권 행사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국민연금은 주주총회 안건 2천770건 가운데 152건(5.5%)에 대해서만 반대했다. 이에 반해 찬성한 안건은 2천618건(94.5%)에 달했고, 중립이나 기권을 표시한 안건은 없었다.

정관변경, 이사·감사선임, 이사·감사보수한도 승인, 주식매수선택권 부여, 임원 퇴직금 규정 제정·변경, 합병·분할 등 거의 모든 유형의 안건에 관해 찬성률이 높아졌다.

특히 국민연금이 2010년에 찬성 93.1%, 반대 6.9%를 기록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태도가 더 소극적으로 변했다고 볼 수 있다.

 현재 KB금융과 신한금융, 하나금융의 최대주주주인 국민연금은 우리금융에 대해서도 대주주로 올라서 국내 4대 금융지주사에 대한 실질적인 장악력을 가지게 됐다. 이 밖에 삼성전자, 호텔신라, 제일기획, LG전자, LG화학, LG디스플레이, LG하우시스, 포스코, 만도, 현대글로비스, KT, SK이노베이션 등 대기업의 지분도 상당 부분 보유하고 있다.

지분율 5% 이상인 기업이 100곳을 넘는 국민연금은 그동안 꾸준히 대기업 지분을 확대해 오면서도 기업 경영에 대한 간섭이나 주주로서 권리 행사를 제대로 해오지 않았으나 정부는 지난해 `국민연금을 통한 적극적인 권리행사'를 천명했다.

곽승준 대통령직속 미래기획위원장은 지난 4월 국민연금을 비롯한 공적 연기금의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의 필요성을 주장한 뒤 같은해 5월에는 "주주총회 시즌인 내년 3월부터 주주권 행사를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국민연금이 기업에 사외이사를 파견하는 등 주주권을 적극 행사할 수 있다"며 강한 의지를 보였다.

정부와 한나라당도 국민연금의 적극적인 주주권행사를 위해 `주주권행사위원회' 설치를 추진해왔다.

하지만, 정작 국민연금은 주주권 행사에 있어서 뒷걸음질을 한 것이다.

강정민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원은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지침 개정, 적극적 주주권 행사 논의 등에 비추어 실망스러운 결과다. 세계적인 조류와 동떨어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강 연구원은 "보다 적극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하지 못한 것은 세부기준에서 명시적으로 규정하지 않으면 재량적으로 판단해 반대할 수 없는 여건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국민연금은 작년 11월 말 기준으로 전체 운용기금의 17.8%인 61조6천576억원을 국내 주식시장에 투자하고 있다.

5% 이상 지분을 보유한 회사의 수는 지난해 6월 말 기준으로 157개 회사다. 2010년 말 139개에서 불과 6개월 만에 12.9% 증가했다.

국민연금은 이달 10일 금융감독원을 통해 대기업들에 대한 지분을 확대했다고 공시하며 삼성전자 지분을 5.00%에서 6.00%로 1%포인트 늘린 것을 비롯해 포스코, LG화학, SK이노베이션, KT, 하나금융지주 등 시가총액 상위사들의 주식을 대규모로 추가 매입했다고 밝혔다.

*주주권 행사

주주권 행사란 의결권과 달리 사외이사 후보 추천, 주주대표 소송 참여, 주주제안권, 이사해임 청구권, 임시주총 소집권, 장부열람권 등 다양한 형식의 감시권한 행사를 일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