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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성장에 중소기업과 상생 없었다

[재경일보 배규정 기자] 최근 중소기업들이 대기업들에 사업영역을 심각하게 침범당하고 있다고 아우성이다.

자본력과 계열사 지원을 등에 업고 막강한 시장 지배력을 확보할 수 있는 대기업들이 덩치에 맞지 않게 동네 골목상권까지 넘보자 나오게 된 소리다.

"대기업을 상대로 중소기업이 살아남기란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에 가깝다"란게 중기업 종사자의 설명이다.

지난해부터 재벌 관련 규제에 대한 논의가 뜨겁게 일어나고 있지만 사실상 무용지물이라는 의견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오히려 대기업들은 기업 인수·합병이나 신규회사 설립, 지분 취득까지 다양한 방법으로 몸집을 불리고 있다.

지난달 재벌닷컴에 따르면 총수가 있는 자산규모 상위 30대 재벌그룹(공기업 제외)은 2009년 말부터 지난해 말까지 442개 회사를 계열사로 새로 편입했다. 같은 기간 이들의 전체 계열사 수는 975개에서 1150개로 불어났다.

특히, 30대 재벌그룹은 회사를 새로 설립하기보다 다른 회사를 통째로 사들이거나 지분을 대규모로 취득해 경영권을 장악하는 M&A 방식을 선호했다.

신규 편입 계열사 중 절반에 가까운 211개 회사(47.7%)가 M&A를 통해 재벌그룹에 속하게 됐다.

CJ는 신규 편입한 39개 계열사 가운데 30개사를 M&A로 인수했다. 롯데는 새 계열사 35개 중 21개, GS는 26개 중 16개, LS는 21개 중 16개를 각각 인수했다.

30대 재벌기업의 M&A 건수는 2009년 40개, 2010년 77개, 2011년 94개로 매년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이렇게 증가하는 이유는 시간과 비용을 아껴 최대의 효율을 내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대기업들은 M&A가 경쟁력 강화를 위한 '어쩔수 없는'선택이라고 말한다.

CJ그룹 관계자는 "우리 그룹 사업군은 식품ㆍ식품서비스, 생명공학, 엔터테인먼트ㆍ미디어, 신유통 등 크게 4개가 있다"면서 "핵심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각 사업군에 적합한 기업들을 인수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각 그룹의 M&A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주력 사업과 동떨어진 경우도 상당수 있다.

게다가 부동산 임대, 유통업 등 큰 투자를 하지 않고 돈을 쉽게 벌 수 있는 업종에 치우치는 경향도 보인다.

현대차그룹은 2009년 1월 축산업 등을 영위하는 서림개발을 인수했다. 효성은 2010년 6월 부동산 임대업체인 오양공예물산을, SK는 같은 달 수면용품 제조업체인 한국수면네트워크를 각각 계열사로 편입했다.

CJ는 지난해 3월 주거용 부동산 관리업체 명성기업을 인수했다.

시너지를 강조하지만, 업종만 놓고보면 사업연관성을 뚜렷하게 찾아볼 수 없다.

산업연구원 주현 중소벤처기업연구실장은 "중소기업 M&A를 상속의 수단으로 삼거나 시너지를 고려하지 않고 기존 사업과 무관한 업종을 무턱대고 M&A 하는 것은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업계전문가는 M&A가 활발하게 이뤄져야 하고 대기업의 M&A도 부정적으로만 볼 수 없지만 `손쉬운 돈벌이'로 인식하거나 중소기업 사업영역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경우는 경계대상이라고 강조했다.

-대기업 자본에 사라져가는 골목상권

지난 2010년 광주지역 향토 유통업체인 '빅마트'가 최종 부도처리됐다.

'빅마트'는 1995년 광주 진월동에 창고형 할인매장을 개점해 5년만에 매출액 순위 국내 유통업체 15위로 급성장한 중견기업이었다.

그러나 대기업들의 유통시장 공략에서 살아남지 못하고 2010년 부도를 맞고 쓰러졌다. 이후 빅마트는 롯데쇼핑에 인수됐다.

이 지역 주민인 권모(여·54) 씨는 "지역민과 함께한 15년 향토기업이 무너졌다"며 아쉬움을 금치 못했다.

광주지역 한 업계관계자는 "빅마트는 지역 내 처음으로 아름다운가게 입점, 온라인 매체 ‘전라도닷컴’ 운영 등 해마다 영업 이익의 10% 이상을 지역에 환원하면서 향토기업의 모델을 만들어 왔는데 지역상권이 대기업에 다 흡수돼 버렸다"고 한숨 섞인 한마디를 내뱉었다.

또한 지난달 31일 리치몬드과자점이 치솟는 임대료를 견디지 못하고 폐업했다. 건물주가 "롯데그룹 계열사와 계약했으니 가게를 비워달라"고 일방적으로 통보했기 때문이다.

롯데측은 "홍대쪽에 진출 하기 위해 매장을 알아 보던 중 부동산을 통해 매물이 있다는 소식을 접해 계약을 했을 뿐"이라며 "일부러 제과점을 밀어낸 것은 아니라고"해명한 바 있다.

롯데는 현 임대료의 두배를 부른것으로 알려졌다. 이 곳에는 롯데의 '엔제리너스' 커피 전문점이 들어설 예정이다.

한편 리치몬드과자점은 대한민국에 8명뿐인 제과제빵 명장 중 1명인 권상범 명장이 지난 30여년간 한결같은 과자와 빵맛을 위해 애쓰던 곳이었다.

30여년의 세월동안 홍대의 지역주민과 함께 역사와 추억을 만들어 내며 지역의 랜드마크자리로 우뚝섰고, 평일만에 평균 600~700명, 주말에는 1200명이 넘는 손님이 찾는 명소였다.

한 시민은 "추억과 역사가 깃든 명소가 대기업의 자본에 의해 없어진다고 생각하니 아쉽다"고 말했다.

시민들은 대체적으로 대형 프랜차이즈 진출로 '소중한 문화'가 사라졌다며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재벌로의 경제력 집중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중소기업과 골목상권을 보호하기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히 요구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