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오진희 기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26일 내놓은 `2012년 한국 경제보고서'의 핵심 키워드는 잠재성장률 확충과 경기부양, 사회통합이다.
OECD는 보고서에서 우리나라 경제가 글로벌 경제위기 재발에도 충분히 대응할 수 있는 정책 여력이 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유럽 재정위기와 개발도상국의 성장세 둔화, 고유가 등 외부 변수와 국내 가계부채를 경제 위험 요인으로 꼽았다.
아울러 공공사회지출(복지지출)이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는 점에 대해서는 우려를 나타냈다. 국가 재정이 취약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OECD는 우리나라의 경기 확장세가 2013년까지 이어진다면서 빠른 고령화와 남북통일을 고려해서 국가 채무를 낮추는 게 중요한 과제라고 지적했다. OECD는 이 같은 이유로 계속해서 재정건전성을 강조해왔다.
OECD는 또 유럽 재정위기로 세계 경기 침체가 심화될 수 있다는 우려로 경기부양을 위한 재정 확대와 확장 통화정책이 필요하다고 권고하면서도 현재의 불확실성이 지나가면 물가안정을 위해 긴축 통화정책을 써야 한다고 조언했다.
저출산·고령화로 잠재성장률이 떨어질 수 있는 만큼 성장 잠재력을 높여야 한다는 권고도 했다. 고용과 성장을 촉진하려면 근로소득세율을 낮게 유지하고, 부가가치세·환경세·보유세 등 간접세를 통해 향후 늘어날 복지 비용을 충당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세계화와 기술진보 탓에 성장만으로 소득 불평등을 완화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만큼 동반성장과 사회통합을 위한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조언도 했다.
◇ 경기부양
OECD는 금융 위기에서 벗어난 지난 2010년 6월 보고서를 통해 경기부양책을 점진적으로 중단하는 출구전략을 주문했지만 이번에는 대조적으로 재정 확대와 확장 통화정책 등 정책 수단을 통해 경기부양에 나설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유럽 재정위기가 완화되면 수출이 늘면서 성장이 빨라질 것으로 전망하면서 이 단계에서는 통화 긴축을 재개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OECD는 "물가를 2~4% 수준에서 안정시키려면 지금의 경기둔화(soft patch)를 극복하고 나서는 통화 긴축을 시작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외환정책에는 유연한 환율 정책을 유지하되 외화보유액이 지나치게 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높은 외화보유액이 위기대응력을 키우고 국가신용도 향상에 도움되지만, 외국 자산인 만큼 환율변동 위험이 존재한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자본 흐름이 급격히 변할 땐 적절한 통화·재정 정책을 써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2010년 나타난 급격한 자본유출에 대한 취약성을 축소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이번에는 '자본 흐름이 급변동'(excessively volatile)하면 거시건전성 조치를 써야 한다고 주문했다.
◇잠재성장률 확충
OECD는 우리나라의 빠른 고령화가 장기 잠재성장률을 갉아먹는 것을 우려하고, 잠재성장률 확충을 위해 OECD에서 가장 낮은 수준인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율을 향상시키는 것이 중요한 과제라고 제안했다.
이를 위해 여성들이 보육 시설을 부담 없이 이용하게 하고 출산휴가·육아휴직을 확대해 가정친화적인 근무환경을 만들라고 요구했다.
또 2017년부터 생산 가능 인구가 감소한다는 전망을 고려해 청년층의 노동시장 참여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직업교육과 고졸취업 기회를 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나치게 높은 대학 진학률, 대학 교육과 기업이 요구하는 능력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청년층 노동수급의 불일치는 개선할 점으로 꼽았다.
정규직 해고가 어려운 대신 임금이 낮은 비정규직 근로자가 늘어나는 현상은 비판했다.
정규직의 고용보호 수준을 낮추고 비정규직의 사회보장 범위를 확대하며, 평생교육 기회를 포함한 직업훈련을 개선하는 포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년제도를 단계적으로 폐지해서 고령자의 고용기간을 늘리는 방안도 제시했다.
한국의 서비스산업 생산성이 제조업의 절반 수준에 지나지 않는 점에 대해서도 우려의 시선을 보냈다. 서비스업 고용의 90%를 담당하는 중소기업의 생산성을 높이려면 정부지원을 줄여서 정부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고 밝혔다.
서비스업 발전을 위해서는 시장 경쟁을 촉진하고 외국인투자 친화적 기업환경을 만들어 외국인 투자를 촉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중소기업에 대한 과도한 공적 지원은 경쟁력을 해친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중소기업에 공공 금융기관의 보증을 늘렸는데 이런 지원책은 중소기업이 공적 지원에 의존하게 하기 때문에 중소기업 시장의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노동시장 개혁과 노동생산성 향상은 OECD가 한국에 권고하는 대표적인 분야로 이번에도 반복해서 강조됐다. 이 분야의 개혁이 매우 더디게 이뤄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방증으로 풀이된다.
OECD는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해결을 위해 비정규직의 임금, 사회보장범위, 훈련기회 확대와 정규직의 고용보호 수준을 낮추는 방안 등을 제안했는데, 지난 보고서에서 달라진 문구를 찾기 어려울 정도다.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 확대를 위해 보육시설을 개선하고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확대할 것을 주문한 것과 서비스분야 생산성 향상 제안, 서비스업 발전을 위해 규제를 완화하고 외국인투자 친화적 기업환경을 만들라고 주문, 중소기업 개혁 등도 이전 보고서에 나와있는 내용이다.
◇사회통합
OECD는 사교육 의존도와 대학 등록금이 많으면 교육 형평성에 문제가 생긴다고 경고하면서 저소득층에 유아교육과 보육 지원을 늘리고, 방과 후 프로그램을 알차게 운영해서 학원 의존도를 낮출 것을 권고했다.
또 유아 교육과 보육 투자를 늘리고 어린이집 인증제를 도입해서 3~5세 누리과정을 정착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5세 이전의 조기 교육과 보육 투자는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을 늘리는 데 도움이 된다고 지적했다.
고등교육 부문에서는 대학의 인증제도 개선, 산학연 연계 강화, 국제화를 통한 질 높은 고등교육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특히 반값등록금은 신중하게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편적인 학비 보조는 과잉 대학진학률 문제를 부추기고, 구조조정해야 할 질 낮은 대학까지 보조금을 받게 한다는 이유에서다. 한 번 도입하면 철회하기 어렵다는 점도 지적했다. 대신 취업 후 학자금대출 상환제도 등을 확대하는 것을 대안으로 내놓았다.
양극화로 인한 사회 갈등과 관련해서는, 세계화와 기술진보 확산 때문에 성장만 해서는 사회적 불평등을 완화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의 지니계수는 외환위기(0.264) 이후 2009년(0.320)까지 계속 증가했다. 최근 증가세는 한풀 꺾였지만, 여전히 0.3을 웃돌고 있다. 지니계수는 1에 가까울수록 불평등 정도가 크다는 뜻이다.
한국의 공공사회지출은 2007년 국내총생산(GDP)의 7.6%에 불과해 OECD 평균(19%)에 한참 미치지 못하고 있지만 공공사회지출 증가율은 1990~2007년 연평균 11%를 기록해 OECD 회원국 중 가장 빠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OECD는 이와 관련해 새로운 복지제도를 도입할 때는 신중해야 하고, 필요한 대상 중심의(well targeted) 맞춤형 복지 지출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수급요건(부양의무자 요건, 소득 기준)을 완화하고 근로장려 세제(EITC)의 적용 범위를 늘려야 한다는 제안도 했다. 기초생활보장 급여에서 주거와 교육을 분리해서 수급자 생활에 안주하려는 유인을 없애는 방안이다.
급속한 고령화와 노인빈곤 문제를 해결하려면 기초노령연금 대상을 저소득층으로 축소하고 지원 수준을 넓혀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사회보장을 튼튼히 하되 해당 지출이 재정건전성을 훼손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접근하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