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이호영 기자] 두산그룹이 박용만 회장을 올 3월 그룹 회장으로 선임한 데 이어 2달 만에 박정원 두산건설 회장을 지주부문 회장으로 선임하는 등 정기 임원인사를 단행, 형제경영 전통에 따라 본격적인 4세 오너 경영 수순에 들어갔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두산그룹은 지난 18일 열린 이사회를 통해 박 두산건설 회장을 (주)두산 지주부문 회장으로 선임했다고 22일 밝혔다.
박 회장은 앞으로 두산건설 회장과 두산 지주부문 회장을 겸하면서 지주부문 실무에서 작은 아버지인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을 보좌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박 회장이 이번 인사를 통해 지주회사 경영 일선에 참가하면서 업계에서는 두산그룹이 재계에서 가장 먼저 오너 4세 경영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박 회장은 고(故) 박두병 초대 두산그룹 회장의 장남인 박용곤 명예회장의 첫째 아들로, 박 초대 회장의 7남매 중 5남인 박용만 회장이 3세 경영의 마지막 주자를 달리는 상황에서 이번 지주부문 회장에 선임돼 두산 4세들이 경영 전면에 등장하기 위한 초석이 마련됐다는 평가다.
박 회장은 특히 (주)두산 보유 지분이 4.35%로 박용만 회장(2.85%), 박용현 전 회장(1.99%)보다 높다는 점에서 차기 그룹 총수로 거론되고 있다.
박용만 회장의 임기가 언제 끝날 지 알 수 없지만, 3세 경영의 시작인 박용곤 두산그룹 명예회장이 약 15년 동안 경영을 책임진 데 반해 고 박용오 전 성지건설 회장은 약 8년,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은 4년, 박용현 전 두산그룹 회장은 3년 동안 경영을 맡는 등 두산그룹 수장의 임기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그룹의 실무를 챙기기 시작한 박 회장에게 5년 내에 경영권이 자연스럽게 넘어갈 것이라는 예상이다.
이날 박정원 회장의 보직 변경과 함께 21일 박용곤 명예회장의 차남인 박지원 두산중공업 사장이 두산중공업 부회장으로 직함을 변경한 것도 향후 두산그룹이 형제 경영 전통에 따라 박정원-박지원-박진원 등 4세 경영 시대를 열기 위한 준비 작업이라는 분석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박정원 회장의 (주)두산 회장 선임은 4세 경영이 수면위로 올라왔음을 시사하고 있다”며 “박정원 회장의 경영수업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냐에 따라 그룹 승계도 윤곽이 잡힐 것으로 보이며, 이번 인사는 두산의 경영구도가 빠르게 재편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도 “박정원 회장은 고 박두병 초대회장의 장자인 박용곤 명예회장의 장남으로, 차기 그룹 회장으로 가는 단계에서 지주부문 회장을 맡게 된 것으로 보인다”며 “그동안 박정원 회장이 이끌어온 두산건설의 생존 문제가 부담스러웠기 때문에 바로 그룹 회장으로 가기보다 지주부문 회장을 거쳐 그룹 회장으로 우회해가는 단계로 분석된다”고 덧붙였다.
두산건설은 지난해 270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경영 상황이 악화된 상태인 데다 대규모 건설공사 프로젝트파이낸싱(PF)을 떠안고 있어 부동산 불황이 계속될 경우 회사의 어려움이 계속될 수 있다는 것. 이처럼 두산건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회사를 책임져온 박정원 회장이 곧 바로 두산그룹 경영 전면에 나서는 것보다 몇 단계를 더 거치는 것을 선택했다는 지적이다.
업계에서는 아울러 지난 3월 30일 박용만 회장이 그룹 회장에 선임되면서 박용곤 두산건설 명예회장이 그룹 지주사 임원으로 선임된 것도 4세 경영의 가속화를 점치는 요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박용곤 명예회장의 장남이 그룹 후계 구도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아버지인 박 명예회장도 위치를 옮긴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두산그룹 관계자는 “박용만 회장이 취임한 지 2개월도 채 되지 않은 상황에서 후계 논의가 나오는 것 자체가 맞지 않다”며 “박정원 회장은 박용만 회장을 보좌하는 역할을 하나 더 맡게 된 것이고, 박지원 CEO 역시 직함이 변경된 것”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또 두산은 사업형 지주회사이기 때문에 이번 박정원 회장의 인사는 승진이 아니라 지주 부문을 전체적으로 살피는 역할을 새로 담당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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