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이규현 기자] 금값이 이달 들어 7%나 하락하는 등 전통적인 안전자산으로 여겨졌던 금의 위상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과거에는 경제 위기가 발생하면 금값이 상승하는 것이 공식처럼 받아들여져 금의 가치가 크게 높아졌었지만 최근 들어서는 그리스, 스페인 등 유럽 재정 위기가 확산되고 있는 데도 가격이 오히려 떨어지고 있다.
반면 미국·독일국채는 금을 대체하는 안전자산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지난 29일(이하 현지시간) 뉴욕상품거래소에서 8월 인도분 금은 이전 거래일보다 20.20 달러(1.3%) 떨어진 온스당 1,551.00 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이는 금값이 지난해 한때 온스당 2천 달러에 육박했고, 올해 들어 지난 2월에 1천800달러에 근접했던 것에 비하면 큰 폭의 하락세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30일 이 같은 금값 하락에 대해 미국과 독일 국채에 대한 수요 증가가 가장 큰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HSBC의 금 애널리스트인 제임스 스틸은 "미국과 독일의 국채가 안전자산 측면에서 금을 능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달러 표시 자산인 미국 국채를 사려는 투자자가 늘어나면서 달러화 수요도 증가한 탓에 달러화가 강세라는 점도 금값 하락에 영향을 주고 있다. 달러화 이외의 다른 통화를 보유한 투자자가 금을 사려면 달러화로 환전해야 돼 더 큰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금을 사들인 투자자들은 유럽의 위기가 확산되면 미국 국채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 달러화 가치가 더 올라가고 금값은 하락해 더 큰 손실을 볼 수도 있어 보유한 금을 팔 수밖에 없다.
23억 달러 상당의 자산을 운용하는 투자회사인 애서튼 레인 어드바이저스도 고객의 포트폴리오에서 금의 비중을 10%에서 5%로 축소했다.
세계금위원회(WGC)에 따르면 세계 경제 위기 속에서도 올해 1분기에 세계 금 수요는 5% 줄었다. 금 공급은 늘어나는데 수요는 부진해 금값이 하락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금이 안전자산으로서의 위치를 유지할 수도 있다고 WSJ는 지적했다.
우선 각국의 중앙은행들이 올해 꾸준하게 금 보유량을 늘리고 있고 이런 추세가 계속되면 금 수요도 늘어나게 된다. 또 위기를 겪고 있는 유럽 등의 국가들이 부양책을 사용해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면 금값이 올라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