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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환출자 해소 비용 삼성 4.3조, 현대차 6.1조… "예상보다 적어"

[재경일보 이호영 기자] 재벌 총수가 계열사 자금을 통해 과도한 경영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사실상 재벌의 기업지배구조의 핵심인 순환출자에 대해 정치권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삼성그룹은 순환출자 해소를 위해 4조3천억원, 현대차그룹은 6조1천억원을 들여야 하는 것으로 각각 집계됐다. 또 6대 재벌그룹 순환출자 해소비용은 14조6천억원이었다. 예상보다 적은 돈으로 재벌의 순환출자 고리를 끊을 수 있는 셈이다.

환상형 순환출자는 대기업 집단 소속 계열사들의 출자 흐름이 동그랗게 연결되는 것을 말한다.

◇ 순환출자 끊는데 예상보다 비용 적게 들어

23일 재벌닷컴이 환상형 순환출자구조인 삼성그룹과 현대차그룹의 순환출자를 없애는 데 드는 지분 매입 비용 등을 계산한 결과, 각각 4조3290억원과 6조860억원이 드는 것으로 추정됐다.

이는 현재 순환출자로 연결된 계열사 중 최소 비용이 예상되는 회사 한 곳을 선택해 연결지분을 대주주가 매입하거나 해당 계열사가 자사주로 사들일 때 드는 최소 비용을 추산한 것이다. 해소대상 기업의 주식가치는 비상장사의 경우 작년 말 장부가치, 상장사는 지난 2일 종가를 기준으로 계산했다.

삼성그룹 순환출자 해소 비용은 이건희 회장 일가의 상장사 지분가치 13조원의 3분의 1에 머문다. 현대차그룹의 해소비용은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의 상장사 지분가치 10조원의 3분의 2에 못 미친다.

삼성그룹은 삼성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삼성에버랜드 등으로 이어진 15개 순환출자 연결 고리 중 최소 8개사의 연결지분을 해소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총수의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지킬 수 있는 핵심 기업인 삼성에버랜드를 지주회사로 전환하는 방식으로 순환출자 고리를 끊으려면 단순 해소 때보다 많은 7조8570억원이 필요한 것으로 분석됐다.

경제개혁연구소는 최근 보고서에서 이건희 회장과 그의 친인척들이 7656억원만 부담하면 경영권을 유지하면서 삼성의 순환출자를 해소할 수 있다는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증권가에서는 한 때 삼성이 지배구조를 바꾸려면 15조원 이상의 자금이 필요하다는 관측을 제기했으며, 이 같은 막대한 규모의 예상치는 현재 순환출자 구조에 섣불리 손댈 수 없다는 근거로 활용됐다.

그러나 정선섭 재벌닷컴 대표는 "순환출자를 점진적으로 해소한다고 전제하면 각 대기업 집단이 충분히 감내할 수 있는 금액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현대차그룹은 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현대차[005380]와 현대차→기아차→현대제철→현대모비스→현대차의 2개 순환출자 연결고리를 갖고 있다.

핵심기업인 현대차를 지주회사로 전환할 목적으로 순환출자를 해소하면 10조7820억원이 필요한 것으로 드러났다.

롯데그룹은 19개의 순환출자 연결고리 가운데 최소 6개사의 연결지분을 해소하는데 2조4570억원, 롯데쇼핑을 지주회사로 전환하는 것을 전제로 해소하는데 3조1080억원이 각각 필요하다.

현대중공업그룹과 한진그룹의 순환출자 단순 해소비용은 각각 1조5550억원과 2130억원, 핵심회사인 현대중공업과 대한항공을 지주회사로 하는 전환하는데 드는 비용은 각각 1조8180억원과 3540억원으로 예상됐다.

한화그룹의 단순 순환출자 해소비용은 40억원에 그쳤지만 핵심기업인 ㈜한화를 지주회사로 전환하는데는 930배인 3조7220억원이 필요하다. 한화→기타계열사→한화손해보험→한화로 이어진 순환출자 연결지분 고리는 24개에 달하지만, 순환출자 해소를 위해서는 한화손해보험이 보유한 ㈜한화의 지분 0.19%만 해소하면 되기 때문이다.

신한금융투자 강성부 채권분석팀장은 "순환출자를 해소하면, 사회 전체적으로 가공의 자본을 형성해 적은 지분으로 많은 부를 누리는 불공정분배를 개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삼성, 현대차, 롯데, 현대중공업, 한진, 한화 등 6개 그룹의 순환출자 고리를 단순히 끊는 데는 14조6천440억원, 핵심 기업을 지주회사로 삼을 수 있도록 출자 구조를 변경하는 데는 27조6천410억원이 각각 소요되는 셈이다.

◇여야 재벌 지배구조 개선 필요성에 공감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이 가장 핵심 사안으로 떠오른 가운데, 특히 순환출자 문제는 가장 민감한 부분이다.

박근혜 새누리당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달 10일 대권도전을 선언하면서 처음으로 "자기가 투자한 것 이상으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불합리한 면이 있다"며 재벌의 순환출자를 신규분에 한해 금지하는 것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새누리당 안에서는 재벌의 지배구조를 언급하는 것이 금기시돼 왔기 때문에 이례적인 것이었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은 최근 신규분에 한해 금지하는 것은 재벌에 면죄부를 주고 면피하는 방안이라고 비판하며 재벌 개혁을 위해 대기업 집단의 순환출자를 전면 해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통합당은 앞으로 새로운 순환출자를 금지하는 것은 물론, 순환출자 구조인 기존 대기업 집단도 3년의 유예기간 동안 순환출자를 해소하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저서 '안철수의 생각-우리가 원하는 대한민국의 미래'에서 "순환출자를 없애는 방향이 맞고 유예기간을 주되 단호하게 철폐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순환출자 해소를 위해 예상보다 적은 비용이 든다는 이번 재벌닷컴 분석으로 인해 순환출자 해소에 대한 정치권의 목소리는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