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이형석 기자]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 조작 의혹으로 신뢰도가 급추락한 은행권에서 대출서류를 조작한 사실이 드러나 금융권에 대한 국민적 비판이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국민은행은 이번 사건이 담당자 개인의 실수라고 해명했지만 다른 지점에서도 이 같은 일이 일어난 사실이 확인됐으며, 또 이번 사건의 담당자들이 그만뒀다는 해명도 실제로는 담당자들이 재입사하거나 승진까지 한 것으로 드러나 '거짓 해명'에 대한 비판도 커지게 됐다.
특히 이번 서류조작이 드러난 국민은행 외 타은행에서도 서류조작이 발견될 경우 파문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A씨 등 30여명은 대출서류를 조작한 혐의(사문서위조)로 국민은행을 검찰에 고소하고 금융감독원에 민원을 냈으며, 검찰은 이 사건을 서울 남대문경찰서에 넘겨 조사하도록 했다.
국민은행은 A씨 등의 대출계약서 원본에서 상환 기한을 지우고 다른 숫자를 적어넣거나 숫자를 변조하는 수법으로 서류를 조작했다.
A씨는 "3년 만기로 중도금 대출을 받았는데 2년2개월 만에 대출금을 갚으라는 연락이 와 원본을 찾아봤더니 칼처럼 끝이 날카로운 물건으로 숫자를 지운 흔적이 확인됐다"고 말했다.
국민은행이 고객에게 나눠준 대출계약서 사본은 만기 3년으로 작성됐고, 은행이 보관한 원본은 만기가 2년2개월로 조작됐다는 것.
조작된 대출계약서를 확인해본 결과, 담당 직원은 숫자 `3'의 아랫부분을 긁어내 `2'로 바꾸고 뒤에 `2개월'을 적어 넣거나, 숫자를 모두 긁어내고 도장으로 `2년2개월'이라고 찍었다.
애초 만기 3년으로 작성돼 고객과 은행이 나눠 가진 대출계약서를 국민은행에서 `2년2개월'로 변조한 것이다.
A씨는 중도금 대출의 상환시기를 앞당겨 잔금 대출로 넘기고, 기한이익(법률행위에 기한을 두는 채무자의 이익)을 잃게 하려는 목적으로 은행이 서류를 조작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민은행측에서도 본점에서 대출 승인을 내주면서 입주 예정일에 맞게 만기를 줄여 재계약을 하도록 했는데 일선 지점에서 제멋대로 계약서의 숫자를 바꿨다며 서류 조작을 시인했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담당자는 개인 사정으로 지난해 그만뒀다"며 은행이 악의로 서류 조작을 지시한 게 아닌 만큼 직접적인 책임은 없다고 밝혔다. 또 조작된 만기는 모두 원상복구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담당자 개인 차원의 실수'라는 국민은행의 주장과 달리 대출계약서 조작은 국민은행의 다른 지점에서도 이뤄졌다.
게다가 관련자들이 모두 퇴직해 책임질 사람이 없다는 국민은행 해명도 거짓으로 드러났다.
당시 지점장은 명예퇴직 후 계약직으로 재입사했고, 부지점장과 담당 과장은 국민은행 본점과 KB금융지주의 카드 계열사로 승진 이동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 일선 지점에서 고객 몰래 관련 서류 등을 조작하는 일이 종종 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서류 조작은 단순한 금융사고가 아니라 범죄행위"라며 "가뜩이나 CD 금리 조작 의혹으로 홍역을 치르는 은행들이 다시 비난을 사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한편, 대출서류 조작이 있었다면 CD 금리 조작 의혹과 겹쳐 파문이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은행의 영업 관행이 대체로 비슷해 국민은행에 이어 다른 은행에서도 대출서류 조작이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