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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피난 세계 3위' 한국 국외재산도피·자금세탁 적발 4년 새 10배 급증

[재경일보 이호영 기자] 글로벌 컨설팅기업인 매킨지에서 수석 이코노미스트를 역임한 제임스 헨리가 1970년대부터 2010년까지 한국에서 외국의 조세피난처로 이전된 자산이 7790억달러(한화 약 888조 원)으로 세계 3위 규모라고 밝힌 가운데 우리나라 부유층과 기업의 조세피난처를 활용한 국외 은닉자산 규모가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합법적으로 신고된 조세피난처의 투자금액이 24조원에 이르고 조세피난처에 설립한 국내기업의 페이퍼컴퍼니(서류상 회사)는 5천 개에 육박하고 있으며, 국세청에 의한 불법적인 국외 재산도피와 자금세탁 적발건수는 4년 새 10배 이상 급증했다.

정부는 조세피난처를 포함한 해외 국가들과 조세정보교환협정을 체결하는 등 누락 세원 차단에 나섰지만 이미 중국, 러시아에 이어 '조세 피난 세계 3위'에 이름을 올린 것을 감안하면 때늦은 감이 있다는 지적이다.

24일 한국수출입은행에 따르면, 1968년부터 지난 3월까지 조세피난처 35곳에 내국인이 투자한 금액은 총 210억 달러이며, 국가별로는 싱가포르가 43억 달러로 가장 많고, 말레이시아와 케이만군도가 각각 31억 달러, 버뮤다 26억 달러, 필리핀 25억 달러 등이 뒤를 이었다.

이 기간 우리나라의 대외투자 총액이 1966억달러인 점을 고려하면 전체 대외 투자액의 10.7%가 조세 피난처에 집중된 셈이다.

또 작년 말 기준으로 조세피난처에 등록된 국내 기업의 페이퍼컴퍼니는 4875개로 파악됐으며, 재벌닷컴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조세피난처로 지목한 44개 국가 또는 지역에 국내 30대 재벌그룹이 세운 외국법인은 47개라고 발표했다.

롯데가 178개 국외계열사 중 13개, 현대차는 212개 중 5개, 현대중공업은 46개 중 5개가 조세피난처에 있으며, LG와 삼성은 각각 4개, 3개다.

국세청 관계자는 "정부 기관의 공식통계에 잡힌 투자는 이른바 절세나 사업계획에 따른 '택스 플래닝(Tax Planning)'에 가깝다"면서 "공개투자 증가분만큼 탈세를 위한 재산도피도 늘어났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관세청이 적발한 국외 재산도피 사례는 2007년 13건 166억 원에서 2010년 22건 1528억 원으로 4년 새 10배 가량 급증했으며, 자금세탁 적발건수도 같은 기간 6건 83억 원에서 43건 924억 원으로 11배나 늘었다.

정부는 올해 상반기 현재 77개국과 조세조약을 맺었고 조세피난처 의혹이 짙은 15개 지역 또는 국가와 조세정보교환협정을 체결하는 등 누락 세원을 차단하고자 세원 투명성을 높이고 국제공조를 강화하기로 했다.

아울러 지난해부터 10억 초과 국외계좌의 자진신고를 유도하기 위해 포상금제를 도입하고 과태료를 상향 조정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이 같은 노력이 지난해부터 본격화한데다 국가간 이해관계로 OECD내 국제공조도 더뎌 부유층의 재산은닉을 추적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